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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유령의 서커스 - 상상력 노트

by noobim 2023. 2. 13.

유령의 서커스

 

*

 

  시집을 읽다 보면 간혹 유령의 존재로 시를 창작한 것을 볼 수 있다. 대개 유령은 분위기가 음산하고 스산한 곳에서 많이들 나오곤 한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굳이 유령을 폐허 가운데 외롭게 놓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유령에게 또 다른 분위기를 부여한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다면 유령은 뭐야 라고 묻는다면, 유령은 존재를 갈망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그려놓고 여기 좀 봐줘 라고 장난치는 투명한 것들이다. 그 의도가 모순이 없이 너무 순수하지 않은가? 그래서 흉물스럽거나 깜짝 놀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한 애처롭게 바라볼 필요도 없다. 이들은 그저 발랄한 서커스를 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살다보면, 사람 상대하는 게 지치고 피곤한 날이 있다. 그럴 때에는 유령의 서커스를 보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면 왠지 모를 앤돌핀과 아드레날린이 분출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시를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서커스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른다. 마치 무대를 가린 커튼과 같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방법을 알려달라고 애원해도 되지 않다가 어느 날은 안경을 벗어 보았다. 유령을 보려고 한 의도라기보다 사람들을 보기 싫어서 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눈을 모아 초점을 벗어나게 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똑바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벗고 초점을 흐리며 나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돌릴 때 보이는데 그것은 아주 운이 좋을 때 보인다. 이를 위해 1초의 찰나를 잡아야 하는데 그 풍경은 대개 이렇다. 유령들은 자신의 머리에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올려 기우뚱 걷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몸을 무릎에 기대고 도너츠 모양으로 통통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뱉기도 하며 반사된 유리문 앞에서 허리에 손을 짚으며 펑키한 화장을 하거나 어떤 친구는 긴장을 풀려고 껌을 경쾌한 소리를 내며 쫙쫙 씹기도 한다. 그리고 벽면에 기대어 한 손으로 신중하게 빨간 석류를 돌리기도 하고, 놀이터에 있는 그네 위에서 풀 스윙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것뿐 만이 아니다. 고양이 같은 검은 봉지를 바람에 굴려 왈츠를 추게 한다. 이 부분이 내가 제일 착각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유령은 자신의 존재를 사람의 형태에 한정시키지 않을 때도 있기에 생각을 열어 두어야 한다. 알고 보면, 이들은 어떤 한 장소를 지정해서 서커스를 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때, 우연에 의해 그 신비의 커튼을 열어주곤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버렸다. 그것을 알게 된 경위는 안경이 헐거워 그냥 내려가는 것을 그냥 두고 위 아래로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던 때였다. 안경을 쓰고 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 안경이 내려가니 유령들의 풍경으로 오버 랩되는 것이였다. 다만 선명함과 희미함의 간극만이 남아있을 뿐, 사람들의 미래는 모두 유령이었다. 그들은 도처에 의도치 않게 볼 수 있는 존재임에 분명했다.

 

  그렇기에 폐허 안의 쓸쓸한 유령보다 자신의 미래를 연습하는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는 더욱 감흥이 되는 유령들이다. 유령의 서커스는 다름이 아닌 나에게 발랄한 일상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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