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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볼 해변에서 검은개와 원반을 던지는 사람 리듬을 맞추며 함께 춤을 추고 아무도 모르게 투명한 공 안에 이 풍경을 훔친다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음으로 내리는 폭설 어지러움 속 아름다움이었다. 2023. 1. 24.
건망증 깨어보니 검은 나팔꽃 안 이었다 축축하고 좁은 틈에서 이리 저리 불룩 불룩거리며 작은 물방울로 물방울이 점점 여러 갈래의 가지를 낼 동안 꽃은 때때로 물컹거리는 과육에 자신의 발이 푹푹 빠지는 꿈을 꾸고 가지 위에는 무엇인가를 움켜진 구렁이가 있었다고 엄마가 후루츠 통조림을 뜯을 때 하는 되풀이 - 첫 아이가 나올 때 와르르 복숭아 향이 났다니까요 배가 불룩 불룩거려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아들 같은 딸이에요 어릴 때 서서 오줌 누는 시늉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줌마는 이름이 뭐예요? 우리 딸하고 많이 닮았네 매일 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엄마를 재워놓고 집에 돌아오는 길 기울어진 운동장 벤치에서 유년 시절 내내 홀로 있던 한 아이가 도무지 치마는 입기 싫고 짧은 머리에 공놀이만 좋아하는 아이가 가만히.. 2022. 10. 4.
콤플렉스예요 콤플렉스예요 사랑이라는 단어와 사랑이 아닌 단어를 고르는 일도 윗입술이 짧아 닿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잘 때는 낙타처럼 말아 올려 입술에 침을 묻힙니다 엄지와 검지로 인중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요 어릴 적 좋아하는 감자를 위해 피글렛 인형을 선물하고 배꼽티를 입었는데 허벌렁 배가 나오니까 달아나더라고요 그래도 이번 계절에는 끝까지 포도주를 마셔보았지요 여우처럼 와인 잔을 감아 뭉뚝한 꼬리로 아직 익지 않은 신맛을 맛볼 때마다 자주색으로 물들여진 잉어가 입에서 미끌어졌어요 거친 혀들이 역할을 잃어버린 채로 허공을 가르며 랄랄 롤롤 룰룰 럴럴 모스부호로 끊어진 혓바닥의 노래 소리가 들리던가요 아무도 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여러 개의 나를 주워 코러스 하려고요. 시작 노트 수정하려던 시 중에 아예.. 2022. 1. 6.
말하고, 말하지 않고 콕, 침을 바른다 검지로 찍어서 지문만큼 묻은 어둠을 눈에 넣어볼까 선명해지는 빛의 스펙트럼 함몰된 달을 보고도 돌출이라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처음 오래인 사이 밤하늘에 구멍이라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말하고 밤이 사라지면 까맣고 까만 네 눈에 어느새 깊은 달이 숨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음-음-음- 투명한 노래를 부른다. *요조 노래 –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시작노트 요근래 친한 사람이 생겼다. 처음 보는데 오래된 사이처럼 편안하다. 더욱이 취미와 개인적인 취향이 같아서 인지 소통이 잘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어딘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이렇게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친밀감의 표현이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오히려 말하지.. 2021. 10. 15.
붉은 실 마음을 다한 공터를 응시하는 버릇 너에게 준 심장은 사라질까 나무들은 이파리를 떨굴 때 진심이 되고 언 강의 초록 물고기가 그것을 받아 몸에 감는다 천둥벌거숭이 천둥벌거숭이 또 하나의 태초 나의 애린 살을 휘감아 오는 깊고 낯선 꿈들 '있잖아 꿈 속에서 비에 젖은 흰 나비가 날지 못하고 땅 바닥에 붙어 있는데 다른 흰 나비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어' 심장이 뛰고 잠에서 깨면 너는 어떤 계절이 되어 돌아올까 박동 속에서 뛰쳐나온 붉은 실들이 나의 몸뚱아리를 뜨겁게 감싼다 2021. 10. 2.
백야 자작나무 숲 사이 연보랏빛 사슴이 차갑게 숨을 헐떡이고 새들의 날개가 회색의 재로 날리는 저녁 빛을 빛이라 부르지 않고 밤이라 부르는 그런 날들 속에서 흰 파편이 내리고 우리는 눈을 감지 못해 심장을 잃어버렸지 어디선가 영원의 조각을 숨기고 있는 카이*야 나는 무엇으로 너를 찾을 수 있을까 파편들을 모아도 뭉쳐지지 않는 말들을 생각하면 선홍빛 핏자국이 투명한 이마 사이에 돋아나고 끝이 없는 저녁, 선잠 같은 오로라가 아득히 너를 스치며 지나간다. * 안데르센, 눈의 여왕 속 인물 2021.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