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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소개10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_구관조 씻기기 무엇을 첨가하지 않고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면 맛집 프로그램은 없어도 되지. 음식을 표현하는 미사여구는 사족이 되니까. 황인찬 시인은 시어의 의미를 찾고 첨가하는 기존의 방식들과는 달리 단지 거리를 두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백을 주고 있다 구식의 관조를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어들을 새롭게 하는 물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보면 갓 스물의 청년의 것이 아닌 나이가 지긋한 노인 양반의 원숙미가 흐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시집은 수염이 긴 동안의 노자가 슴슴한 냉면을 차려온 기분이랄까. 슴슴한 건 질리지도 않는다 2020. 8. 20.
유치환의 '초상집' 감상 초상집 / 유치환 기척 없이 짙어오는 푸른 저녁의 푸른 어둠이 옷자락에 묻는 호젓한 골목길, 이따금 지나치는 이도 없는 그 돌다리목 한 오막사리 문전에 상중이라 등 하나 내걸려 밝혀있고 상제도 곡성도 문상도 없는 가엾은 초상집 늙은 홀어미에 소박더기 딸, 그리고 그의 철부지 딸, 셋이 서로 쳐다만 보고 불꺼진 듯이 살다 그 젊은 소박더기가 그만 죽은 것이다. 아까사 언짢아하는 한 이웃 영감이 등 하나 들고와 문전에 밝혀주고 가고, 단간방 한 옆으로 아무렇게나 눕혀둔 그 지지리도 못났던 목숨의 숨 끊어진 딸년을 두고, 그 또한 딸년 못잖은 기박으로 오직 쇠꼬치같이 모질음만으로 살아온 늙은 어미는 이내 몹쓸년! 몹쓸년을 뇌이고 있고, 이미 뱃속에서부터 생겨선 안 될 것이 생겨서 어느 뉘게서도 한번이고 따뜻이.. 2020. 8. 20.
진은영의 '우리는 매일 매일' * 노련한 마법사, 반짝이는 유리 화병을 만들다! - 진은영의 『우리는 매일 매일』을 읽고.... 1. 들어가며 ‘(「서른 살」) (「견습생 마법사」)’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만든 시인 진은영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떤 마법사로 살고 있을까? 하고 두 번째 작품인 『우리는 매일 매일』의 시편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이미 그녀는 ‘견습생’의 표 딱지를 떼고 신비한 화병을 내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무딘 나의 감각을 살려내었고, 그녀의 화병에 담긴 시어들은 햇빛에 비춰 내리는 오색찬란한 유리 조각들 같았다. 마흔이 가까워진 그녀는 전보다 더 노련한 마법사가 되어 있었고, 자신만의 유리 화병을 만드는 앤솔러지를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엉터리 그의 갈라진 목소리 안.. 2020. 8. 20.
진은영의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시인의 '새로운' 사전 -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1. 들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문학 함은 극명히 그 깊이와 수준이 다르다. 오늘 소개할 진은영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시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문학적 깊이가 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을 함에 있어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하여, 또한 문학이 단지 개개인의 감정과 의식을 건드는 일에만 국한되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진은영의 시들을 통해 큰 빛을 보게 됨과 동시에 만족할 만한 답도 찾게 되었다. 이글에서는 그녀의 문학 속에서 발견하게 된 것들을 나누며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2. 詩는 죽었다 : 이전 詩들.. 2020.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