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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기억의 기록법

by noobim 2021. 8. 13.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전 인연들을 찾는 버릇이 있다.

지금보다 옛날을 추억하고 싶은 욕망과 현실이 조금 힘들 때 먹는 통증약과 같은 버릇이다. 

그런 인연들을 찾아 나선 모험은 대개 감정 소모로 끝이 난다. 

 

시작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 알았던 동창들은 잘 살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에 대해서 화두를 던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핑퐁이 잘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는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나기 전 예상 문제와 같은 질문을 준비해 간다.

너무 예민한가 싶다가도 질문의 차례와 순서를 정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가운데 

옛날 일을 회상하며 확인하면 삐그덕 거리는 지점이 있다. 서로의 고개는 갸우뚱으로 간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확인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은 아닌데

다르면 무슨 화인 맞은 것처럼. 이내 어색해지고 만다.

 

다만, 서로에게 공유된 기억을 가지고 그간의 세월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도 않았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편한 대로 상대를 기억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주관적인 것은 폭력적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런 자리에는 잘 나가지 않기로 다짐하곤 한다. 

 

그럼에도 예외가 되는 지점은 있다.

나를 먼저 찾아 주는 인연이 있다면 이러한 사전의 생각들에 대해 개의치 않고 지나온 세월에 대한 안녕을 전한다.

 

어제는 선배 한 분이 몇십 년 만에 나를 찾았다. 감사의 의미로 식사 요청을 드렸고 초대해 주셨다. 

대화도 나름 유쾌했고 적당히 쿨하고 적당히 따뜻함이 있는 안부가 오고 갔다.

참 괜찮은 만남이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선배는 농을 쳤다. 

 

- 오랜만에 본 선배가 이상한 아저씨가 되어 있는 건 아니죠? 

 

나는 이 말이 '기억 잘 간직하고 있지요?'라는 말로 들렸다. 

이 말을 함부로 받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의 기록법 대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

가벼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현재에 집중하는 답을 했다.  

 

- 이제 아재랑 아짐 아니겠어요? 같이 늙어가는 판에 ㅎㅎ

 

상대를 향한 배려의 기록은 지나간 과거보다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세월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예의와 안녕을 상대에게 전하며

돌아보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현재가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섬세한 기억의 기록법이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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