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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 다시 읽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by noobim 2020. 8. 20.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고 

 

 

1. 줄거리 요약

 

  스물여섯 살인 구보는 직업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종로를 배회하다가 자신의 신체에 문제가 있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구보는 동대문행 전차 속에서 예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한다. 구보는 그 여자를 모른체 했지만 그 여자가 내리자 곧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서 차를 마시다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보는 다시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성 역으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래의 온정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눈길들에서 슬픔을 느끼고 만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곳에서 중학 동창을 만난다. 그 동창은 중학시절 열등생이었는데 그와 동행한 예쁜 여자를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에 대해 생각을 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를 그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느낀다. 구보는 다방에서 나와 동경에서의 옛사랑을 추억하고 그 여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또 전보를 배달하는 자전거를 보고 친구에게 편지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보는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온 소복한 여인을 보며 모든 일이 가난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새벽 2시경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서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결혼도 하고 창작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2. 소설 속에 나타난 행복의 의미

 

  박태원의 소설에서 주인공 구보는 자신의 정신적 결핍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끊임없이 숨겨져 있는 행복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고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는 1938년이다. 그 시기 일제 치하 조선 사람들은 ‘황금광 시대’에 살면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 경제적으로 풍요롭기를 원했다. 작가 박태원은 이러한 풍요로운 도시의 모습 속에서 더욱 결핍되어 가는 조선, 그 중에서도 경성의 상황을 묘사하였다. 단순한 도시의 일상이기는 하나 그 안에서 작가는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이 작품에서 제기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설의 단락은 다음과 같다.

 

  문득, 구보는, 그러한 여자가 왜 그 자를 사랑하러드나, 또는 그 자의 사랑을 용납하는 것인가 하고, 그런 것을 괴이하게 여겨본다. 그것은, 그것은 역시 황금 까닭일 게다. 여자들은 그렇게도 쉽사리 황금에서 행복을 찾는다. 구보는 그러한 여자를 가엾이, 또 안타까웁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 사나이의 재력을 탐내 본다. 사실, 같은 돈이라도 그 사나이에게 있어서는 헛되이, 그리고 또 안타까웁게 소비되어 버릴게다. 그는 날마다 기름진 음식이나 실컷 먹고, 살찐 계집이나 즐기고, 그리고 아무 앞에서나 그의 금시계를 꺼내보고는 만족하여 할게다.
황금광 시대(黃金狂 時代)
저도 모를 사이에 구보의 입술은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황금을 찾아, 황금을 찾아, 그것도 역시 숨김없는 인생의, 분명히, 일면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들고,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자기보다는 좀 더 진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중략) 조선 전토의 칠할,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은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하여 갔다. 황금광시대. 그들 중에는 평론가와 시인, 이러한 문인들조차 끼어 있었다.

 

  구보가 이러한 도시의 모습을 통해 얻은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의 요소가 돈이라고 말하여도 구보가 느끼는 행복은 그것이 아닐 수 있다. 구보도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여자를 생각한다거나, 벗을 만나거나 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들은 돈을 추구하고 물질을 추구하였고, 구보가 생각하는 행복은 거기에 없었다.

  구보의 행복은 평범한 하루 안에 있었다. 조그만 강아지가 토스트를 먹고 있는 사내의 구두코를 핥고 있는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따르며 눈깔 아저씨라 놀리는 아이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에워싸는 어머니에게서 가장 깊은 행복을 느끼며 이제 그 행복을 위한 ‘생활을 가지리라’ 다짐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황금광 시대에 느끼는 절망적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행복이라는 것이 황금을 쫓아가는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3. 창작기법에 대해

 

  이 소설의 기법 중 특이한 것은 주인공인 구보가 집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령 시에서나 보여줄 법한 기법을 소설에 구성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목적 없이 소설 가운데에서 배회한다고 해서 작가도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박태원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구보를 통해 그 당시 경성의 풍경을 여실 없이 묘사하고 있으며 그는 고현학이라는 소설의 방법론을 전면에 내세워 작품을 완성하였다. 고현학이란 계급의 격차, 직업의 다양성, 문자의 종류와 양의 풍부함 등으로 문화의 중심핵인 대도시의 격심한 풍속의 변화를 집중 연구하는 학문으로 실제로 고현학의 연구방법은 현전의 풍속에 직접 부딪혀서 그것들을 관찰, 필기, 스케치, 사진 등으로 재료의 채집을 하고, 그것들을 수집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을 이해한다면 구보 씨가 소설 중간 중간에 대학 노트를 들고 다니며 이리 저리 경성 시내를 배회하는 것은 다 계획이 있는 일이었다. 또한 행복을 찾는 일에 고현학의 기법을 썼다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행복이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찾아 발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4.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

 

  가난한 시인에게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고 고독한 예술가의 삶을 확인한 구보는 다시 어머니를 생각하며 일상적 삶과의 화해를 꿈꾼다. 그는 이제 허망된 행복을 더이상 갈망하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하여 그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을 통해 모순된 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은 소유하고 있으나,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는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또한 작가가 의도한 일 일수도 있다. 구보 씨의 소설이 마무리 되는 순간, 그 의지는 드러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은 구보 씨가 부럽기만 했다. 일제 치하의 상황과는 비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코로나라는 현실 앞에 우리의 일상이 허물어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황금광의 시대에 산 것에 대한 참회로 새로운 '생활'을 향한 염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이러한 구보의 다짐이 우리의 다짐이 되어지기를 소망해본다.

 

 

 

박태원의 절친 시인 이상이 '하융'이라는 필명으로 그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연재 삽화(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