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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

by noobim 2019. 10. 12.

나의 적. 나의 원수.

내 아버지는 중학교  때부터 얼마 전까지도
나에겐 그런 의미였다.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버지는 완벽했다.
나쁘지 않은 직장과 지위 
그리고 호남형 이미지에 스마트함까지.
그런 탓에 완벽주의자였다.

나주 시골 골짜기 오룡골에서
공부 잘해 돈 잘 버는 잘생긴 차남하면 
다 아버지로 알아봤으니까.
 
그런 그가 나의 적 나의 원수가 된 이유는
아니, 서로의 적이였던 것은

첫째 딸이 
본인의 계획과 기대와는
정 다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

그로 인해 나는 딸이 아닌 아들처럼 맞고 자랐다.
또 성격이 옳은 건 옳다하고
아닌 건 곧 죽어도 아닌 탓에
덜 맞을 매도 얹어서 더 맞고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오기로 버틴 날들이다.
하라는 공부 소리에
2층 집에서 아버지 몰래 가방 던져 가출한 다음 
교회 수련회 가버리고 다음 날 나타나면

아버지 손에는
크레파스가 아닌 야구빠따가 들려지기 일수.

'맞고 갈래 그냥 있을래' 라는 물음에
맞고 가겠습니다 대답하고는
스스로 엎드려 뻗친 목석같은 딸.

그 앞에서 나의 적은 강인하게 나를 길들이려 했고
야구 빠따의 스윙도 한점 흐뜨러짐이 없었다.

그런 생활은 고등학교 때 까지 지속되었고
급기야 나는 나의 적이 싫어하는 길을 골라
나의 진로로 삼았다. 
그것도 고향 전주 집하고는 멀리 떨어진
경기도의 한 골짜기 신학대학교로 말이다..

실상 이 모든 계획은
신앙이 깊어서라기 보다
적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도 지지 않았다. 호적에서 파겠다고 했다.
나야 탱큐라 생각했고.

아버지 회사에서 자녀 첫 학기 학비가 나와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그 후로는 온갖 잡일과 다양한 주거형태를 경험해야 했다.

한 평짜리 고시원. 외가친척 옷 창고 방. 
아동센터 사무실. 서울에서 가장 싸고 방음도 
되지 않았던 구로공단 가리봉 월세방 

이러한 곳들이 내 은신처가 되어야 했다.
물론 감지덕지라 감사했지만...

작년 이 맘 때 쯤
나는 교회로 가출한 날들에 대한 
공적을 인정(?) 받았다. 

아버지는 높은 지위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셨고
여전히 강했기에
야구빠따와 같은 일격의 상황을 각오해야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난데없이 내게 동안 미안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 의심이 많아서는
'참나! 내 적이 저리 약하진 않을 텐데' 하고 뭔가 다른 게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진심이었다.

체면 구겨진다고
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던 그가 
교회도 다니지 않는 그가
안수식에 왔으니 말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져서는 가만보니 
그는 완벽한 옛날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찬찬히 훑으니 나의 적도 인간인지라
슬슬 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수식어를 붙였다
나의 적에서
나의 '친애하는' 적으로..

어찌보면 나의 지금 모습에 대한 공로의 대부분은 나의 적에 대한 오기로 작동하였으니
'친애하는'을 붙이기로 한 것.

그 후 얼마 뒤,

여러 의미에서
처음으로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참으로 오글거렸으나 
목석같은 딸에서 조금 벗어나려 
일부러 노력해 본 것.

사진 속에서
나는
나의 친애하는 적에게
추신을 달았다.

다름 아닌

V.

나는 나의 친애하는 적, 
이제는 원수가 아닌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월에 약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강하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아버지의 생신 날.

나의 바램이 
아버지가 세월을 살면 살 수록 불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라여 보는 것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목석같은 딸을
더 묵묵히 바르게
이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해 생신선물은
홍삼녹용 두둑한 진땡 한약이다.

바라는 바대로 부디 건강하시라.
그래서 딸이 혹여 못난 짓을 하게 되면
야구 빠따와 같은 일격을 건장히 날려주시라..

그리하여 그렇게 흔들림없이
'나의 친애하는 적'으로 
오랫동안 내 옆에 남아주시라..
기도해 본다.

 

 


 

* '나의 친애하는 적'은 영화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자신의 제일 가까운 사이이자 3천년 묵은 원수지간이라 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던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가 사망하고 8년 뒤에 그를 그리워하여 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둘은 서로 애증의 관계인 동시에 희안하게도 서로를 보완했고 필요로 했었다. 원제는 'My best fiend' 인데 얼핏 뒷말을 'friend'로 봐서 인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허지웅의 책 '나의 친애하는 적'을 참고했음**

 

 

노트북 정리 중 문제의 사진 발견! 곧 다가오는 생신에도 진땡 한약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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