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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7

마음의 날씨 인간관계 가운데에서 온도 차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는 관심이 없고 내가 별로 관심이 가지도 않는데 어떤 이는 나에게 애정을 쏟는 열대우림 기후같은 머피의 법칙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하루 하루의 마음 날씨를 결정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밝고 또 어떤 날은 춥고 또 어떤 날은 따뜻한 날씨들. 동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다 타인들의 것 늘 멀미가 났고, 나는 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입지 않아도 되는 옷들을 입어야 했다. 잘 보이려고 더운데 긴팔 입어야 했고 추운데 민소매 티를 입어야 하는 나날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하다 보면 이윽고 다 얼어붓는다. 나도, 상대도 말이다. 그래서 결심한 일 내가 나의 날.. 2021. 9. 29.
조각보 새색시 골동품 가게에 간 일이 있었다. 대학원 때,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면 인사동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바닥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떤 이야기를 지녔음에도 그것들은 자신의 몸 어딘가에 숨기어 침묵하고 주인을 찾으려고 안 간 힘을 쓰는 것도 아니라서 더 눈이 갔던 것 같다. 결혼 후, 다시 찾은 골동품 가게에 간 이유는 외할머니 유품으로 수제 조각보를 받고 나서 너무 복받쳐 오르는 마음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늘상, 나에게 말하기를 '저 손녀년이 시집이나 갈려나 모르것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랑가....'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다가 내가 결혼한 후 3개월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조각보란 슬픔의 근원이었다. 그런 연유로 문제의 그 물.. 2021. 8. 31.
일기1 큰 파도를 가두기에 효엄이 있는 것은 일기장 만한 것이 없다. 나는 그 파도가 방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도정하는 펜을 들고 서툰 미장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그런 날이면 밤잠이 없어진다. 아무리 완벽하려해도 허공이 보이니까. 얼마 전의 일이다. 원치 않는 판도라 상자가 열어져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그 상자의 주인공은 내가 분명 아는 사람인데 낯선 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말라고 한참이나 나를 응시했고, 그 밤은 가위에 눌려 잠에 들지 못했다.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 상자가 닫아지지 않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한 없는 슬픔이 몰려왔는데 실망보다 상자의 주인공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고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잠시 마음이 부산했지만, 이러한 사실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희망을 .. 2021. 8. 21.
기억의 기록법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전 인연들을 찾는 버릇이 있다. 지금보다 옛날을 추억하고 싶은 욕망과 현실이 조금 힘들 때 먹는 통증약과 같은 버릇이다. 그런 인연들을 찾아 나선 모험은 대개 감정 소모로 끝이 난다. 시작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 알았던 동창들은 잘 살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에 대해서 화두를 던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핑퐁이 잘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는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나기 전 예상 문제와 같은 질문을 준비해 간다. 너무 예민한가 싶다가도 질문의 차례와 순서를 정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가운데 옛날 일을 회상하며 확인하면 삐그덕 거리는 지점이 있다. 서로의 고개는 갸우뚱으로 간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확.. 2021. 8. 13.
울어도 괜찮아요 복지관에 한번 씩 오는 날이면 어르신들을 상담해 드리는 게 내 일이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는 게 재미있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때로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통된 화두가 있다. 그것은 외로움과 고독 인생이 허망하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자식들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를 배우자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아무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쏟고 가면 어깨가 전보다 더 외소해지신다. 그래도 속은 시원한단다. 나보다는 크리넥스가 작은 위로라 말없이 한 두어장 건네어 드리고 다음에도 이야기 하고 싶으면 언제든 오시라 말씀드린다. 다독여 드리고 다음 일정을 보니 파릇한 20대 실습생에게 강의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강의실에서 기자재를 준비하는 동안 다짜고짜 "우리 선생님들 핸드폰에 어플 하나 깔아보세요" "'페이스 어.. 2020. 8. 21.
안부 K 선배 여긴 눈이 많이도 내립니다 하느님도 오한이 걸리셨는지 밤새 흰 눈으로 으슬대고 있네요 체휼. 그 단어를 많이도 말했던 선배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들 맘을 안다 했던 하느님 아픈 마음도 알았던 움트려 했던 봄에 돌아선 꼭 오늘같은 이 나이 서른에 무엇을 알아 돌아섰을까요 그 나이에 무엇을 앓아 떠났던 걸까요 나는 이제 마흔이 가까이 되었는데도 마음 속은 아직 어리기만 합니다. 살다보니 가끔 하느님도 미워지는데 선배는 이 길 끝에 돌아와 돋아난 새파란 폐를 보여주며 나의 투정을 들어줄 것 같은데 다음에 보자는 약속은 언제 이뤄지는 걸까요 여긴 눈이 많이도 내립니다 거긴 어떤가요 안부 없을 안부를 가만히 물어봅니다... 2020년 02월 17일에.. 2020.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