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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7

상념-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글이란 좀 더 나은 사람이길 바라여서 의존하는 도구같은 것이다. 그러면 아주 조금씩은 나를 점검하게 되고 또한 옆 사람들을 알게 되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게 글이란 참회의 도구인 셈이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공부할 때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하고서는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커버되지 못한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된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확인하게 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 요즘 들어 공부하는 일이 더 재미있어졌다. 무엇에 대한 자격증을 따는 일이 아닌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공부들.. 그 공부들 덕에 더욱 나 자신을 경계하고 점검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더 나은 사람이.. 2020. 8. 18.
회귀의 일상 회귀의 일상 1. 불귀천 나는 그 해 서른 다섯 해 를 살았고, 그 만큼의 후회와 더러는 많은 이를 그리워했다. 빠른 시간을 사는 동안에는 그 그리움과 후회가 지나가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으나여전히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러한 날들 가운데 사람들은 빠르게 전진하며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여졌지만,달리 보면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회귀의 과정들이다. 생(生)과 사(死)가, 사(死)와 생(生)이 공존하는 나와 너의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라. 시계가 돌아간다바퀴가 돌아간다집으로 돌아간다잠자리로 돌아간다혹은 누군가가 다시 돌아가다 결국 이러한 돌아감의 하루이다. 이러한 회귀의 한 토막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 본 적이 있다. 잠을 자고 그 아침이 다시 돌아왔고쥬스 믹서기의 악갱이들이 모터를 통해 .. 2020. 1. 14.
거시기 목포가 고향인 맘 넓은 순옥이 이모는 몇 해 전 구순 어매를 여의었다. 수서에서 바삐 기차를 타고 도착한 목포 장례식에는 전라도 홍애가 나와야 할 판인디 빨판 좋은 실헌 낙지가 나와 사람들이 수근댔다. 어매가 가셨어도 넉살 좋은 순옥이 이모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 젓가락에 빙빙 돌려 세발 낙지를 생으로 멕이는 것이였다. "시방 저승으로 가이 보내자는 것이여 머시여!" 괄괄한 아재는 함껏 썽을 내고 돌아서서 나가고 옴싹 옴싹 잘도 먹는 내한테만 두마리씩 돌려 맥였다. 이모와 나와는 막역하기에 한 마디 거들었다. "이모 맛나긴헌디 왜 이거 주어? 사람들 다 썽내며 가자네...." "아야 신경쓰지 말어야! 이 먹는다고 암씨롱도 안했싼게 니나 마이 묵고 가그라" 성남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나는 급체를 하였.. 2020. 1. 14.
그 날의 이야기 그 날의 이야기 살아온 날들 속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나 또한 여러 날이 있지만 9월 20일이 그러한 날이다. 그러니까 2년쯤 되었을까. 이날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다시 살게 된 날이라 그렇다. 그 날 이후로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일과 잠을 자고 눈을 뜨는 일들의 사소함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기적인 오늘의 하루라는 표현은 나에게 감성을 떼어낸 극사실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이 하루 속에 사는 나는 부족할지라도, 이 하루는 나에게 함부로 살 수 없는 오늘이다. 그 당시, 나는 주말에는 목회 일을 그리고 주중에는 노인 복지 일을 했었다. - 그렇다고 특별한 마음가짐 이런 것은 없었고 그냥 일이 있으니 해야 했다 – 겹벌이를 하며 공휴일.. 2019. 10. 14.
나의 친애하는 적 나의 적. 나의 원수. 내 아버지는 중학교 때부터 얼마 전까지도 나에겐 그런 의미였다.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버지는 완벽했다. 나쁘지 않은 직장과 지위 그리고 호남형 이미지에 스마트함까지. 그런 탓에 완벽주의자였다. 나주 시골 골짜기 오룡골에서 공부 잘해 돈 잘 버는 잘생긴 차남하면 다 아버지로 알아봤으니까. 그런 그가 나의 적 나의 원수가 된 이유는 아니, 서로의 적이였던 것은 첫째 딸이 본인의 계획과 기대와는 정 다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 그로 인해 나는 딸이 아닌 아들처럼 맞고 자랐다. 또 성격이 옳은 건 옳다하고 아닌 건 곧 죽어도 아닌 탓에 덜 맞을 매도 얹어서 더 맞고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오기로 버틴 날들이다. 하라는 공부 소리에 2층 집에서 아버지 몰래 가방 던져 가출한 다음 교회 수.. 2019.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