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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 시 쓰기’를 통한 백석의 현실 인식 연구- 『사슴』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by noobim 2021. 4. 29.

1. 서론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리는 백석은 『사슴』 이전의 시들은 절제되고 묘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이후의 시들은 그것을 넘는 ‘근원적 존재를 찾아가는 시 쓰기’에 치중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에 살면서 그것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여행을 통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국수」)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 당시 허물어지고 피폐해진 공동체의 모습을 살뜰히 찾아 준다.
그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힌 바람벽이 있어」) 식민지의 피지배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제한된 자아로서의 삶에서 저항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살아갔다. 또한, 빼앗긴 들에서 방랑하며 자신을 여행객으로 자처하여 음식, 고향,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 등의 소재들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나와 객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과 자신을 동일 시 하는 현실 인식에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시인은 근원적 존재를 밝히고 그것을 통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남신의주 유동 박사봉방」)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앞에 놓인 현실 앞에 해야 할 일과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나간 점을 염두에 둬서 볼 때 흥미로운 감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본 발제에서는 『사슴』 이전의 시와 이후의 시의 비교하며 그의 시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해 살펴보며 또한 이후 시에서 나타나는 주요 소재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나아가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시인의 현실 인식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사슴』 이전의 시와 이후의 시의 비교

사슴 이전의 시의 특징에 대해 분류해보자면, 첫째,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형식으로서의 시가 있으며, 이에 속하는 시들은 「가즈랑집」, 「여우난골족」, 「고향」, 「고방」, 「오리 망아지 토끼」, 「오금덩이라는 곳」, 「여우난골」 등이 있으며 두 번째의 경우로는 화자의 의식이나 시각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보이는 정물에 묘사하여 고적감을 만드는 부류의 시들이다. 이것은 「비」, 「정주성」, 「청시」, 「산비」, 「석류」, 「머루밤」, 「노루」, 「창의문외(彰義門外)」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마찬가지로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대상화되어 있지만, 인물의 행위가 개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인물의 행위 역시 대상처럼 존재하기에 정적인 사물로 흡수되어 인간과 사물은 동질적으로 하나로 간주하며 「초동일(初冬日)」, 「머루밤」, 「추일산조(秋日山朝」)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 특징은 이야기성 구성을 빌려 사건의 전개가 서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촌에서 온 아이」와 「팔원(八院)」이 이에 해당된다.
이처럼 백석의 시는 여러 경향이 공존하며 분명한 편차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편차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대상, 행위, 상황이 화자의 의식이나 내면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관찰과 사실의 세계’가 압도적이다. 따라서 백석의 초기 시는 대부분 ‘관찰과 사실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슴』 이후의 시에서는 앞서 말한 ‘관찰과 사실의 세계’가 유지되면서도 그 빈도는 확연히 줄어 「외가집」,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동뇨부(童尿賦)」에 그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에 비례하여 기행시의 성격이 확대되는 것을 발견하고 사실과 묘사에 더하여 시인의 감정 표출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사슴』 이전의 시에서는 객관적인 태도로 줄곧 주관적 정서를 엄격하게 절제하던 것과는 달리 다수의 작품들은 주관적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때 대상과 화자는 동일성을 지니게 된다. 말하자면 화자의 중립적인 시각이 내면으로 투영되어 전이되는데 그 중 하나의 쉬운 예가 「멧새소리」이다.

처마 끝에 明太를 말린다
明太는 꽁꽁얼었다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멧새소리」 전문


이 시에서 ‘명태’는 화자의 처지와 내면이 투사된 대상이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라는 구절이 대변하듯, 화자의 처지와 노방(路傍)의 삶이라는 점에서 명태와 동일시된다. 이 시에서 관찰의 대상은 객관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키고 동일시되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슴』 이후의 시에서 두드러진 점인데 매개물을 통해 환기되는 것들은 주로 부재의 시공간의 상황이자 자신의 처지이다.
「흰 바람 벽이 있어」에서도 시인의 처지와 상념이 대상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슴』 이전의 백석이라면 ‘힌 바람 벽’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묘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흰 바람벽에서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또한 그들이 있었던 공간과 시간을 내면에 투영한다. 그렇기에 더 이상 ‘관찰과 사실의 세계’로 그치지 않으며 더 나아가 관찰자에 머물던 화자가 자신을 인식하는 주체로 등장하여 자신의 쓸쓸하고 외로운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는 주체를 상정하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사슴』 이 전의 세상은 ‘나’를 배제하고 객관적 거리에서 바라본 관찰과 사실의 세계였다면 이후의 시는 ‘나’가 관여하고 ‘나’의 삶과 긴밀하게 얽힌 ‘인식의 세계’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더 이상 동화적이고 몽상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황지우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에게 타자는 바로 ‘나’이며 ‘자기(自己)’이다. 그렇기에 ‘내 사람’을 생각하고 (「통영」), ‘하이얀 약사발’에서 ‘녯사람’을 생각하며 (「탕약」), 흰밥과 가재미와 나를 동질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선우사」), 의원의 손길 속에 고향과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고향」), 고향의 추억이 오리에게 투영되게 된 것이다(「오리」).

3. 『사슴』 이후 시의 주요 소재

사슴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눈 그의 시 세계의 변화는 나와 객체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이입하는 것에 이른다. 그리하여 객체와 나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 동일시 된 하나이다. 백석은 이러한 것을 여행을 통해 얻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소재들 즉, 음식과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고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코 남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삶이라 인식하게 된다.

1) 기행시

백석 시 세계에 있어 기행시편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사슴󰡕 이후 그의 후기 시편에 가장 먼저 나타나며 후기의 만주 유랑시편으로 옮겨가는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백석이 남긴 기행시편은 1936년 1월 23일 󰡔조선일보󰡕에 발표한 「통영」을 기점으로 만주로 유랑에 오르기 전인 1939년 사이에 발표한 것들로 약 28편(󰡔사슴󰡕에 들어있는 2편을 포함하면 30편)에 달한다. 이 작품들은 양적으로는 백석의 작품 95편 가운데 30%에 달하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기적으로는 그가 돌연 신문사를 그만두고 함흥의 영생여고보 교원으로 전직한 1936년 4월부터 서울로 돌아와 다시 󰡔여성󰡕지 편집일을 한 1938년, 그리고 만주로 떠나기 전까지 전국의 각지를 여행한 1939년 사이의 기간 동안에 쓰여졌다.

해당 작품들로는 남쪽 해안지방을 여행한 기행시편으로 1936년 1월 󰡔조선일보󰡕에 발표한 통영, 그리고 같은 해 3월 󰡔조선일보󰡕 발표한 남행시초(南行詩抄) 연작에 들어 있는 「창원도(昌原道)」 , 「통영(統營)」, 「고성가도(固城街道)」, 「삼천포(三千浦)」의 4편이 있다.
함경남도 등 북관지역을 배경으로 한 기행시편들로는 1937년 󰡔조광󰡕 3권 10호와 󰡔여성󰡕 2권 10호에 발표한 「북관(北關)」, 「노루」, 「고사」, 「선우사(膳友辭)」 , 「산곡」 등의 ‘함주시초 (咸州詩抄)’ 연작 5편과 1938년 󰡔조광󰡕 4권 10호에 발표한 「산숙(山宿)」 , 「향악(饗樂)」 , 「야우(夜雨)」 , 「백화(白樺)」 등 산중음 (山中吟) 연작 4편 그리고 같은 해 󰡔삼천리문학󰡕 2집에 발표한 「석양」. 「고향(故鄕)」 「절망(絶望)」과 1939년 10월 󰡔문장󰡕 1권 9호에 발표한 함남도안 (咸南道安) 등을 들 수 있다.

평안도 일원의 관서지역을 여행한 산물로는 1938년 10월 󰡔조광󰡕 4권 10호에 발표한 「삼호(三湖)」, 「물계리(物界里)」, 「대산동(大山洞)」, 「남향(南鄕)」, 「야우소회 (夜雨所懷)」, 「꼴두기」 등 6편을 담고 있는 물닭의 소리 연작과 1939년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조선일보󰡕에 발표한 「구장로(球場路)」, 「북신(北新)」 , 「팔원(八院)」, 「월림(月林)장」 등 ‘서행시초(西行詩抄)’ 연작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이두국진가도 (伊豆國溱假道) 등도 기행시편의 범주에 넣어 논의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시를 쓴 것은 결코 우연이나 흥미가 아니다. 그의 초기시를 빌어 생각해보면 백석이 그리는 고향이라는 곳은 동화적이고 평화로운 이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은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너진 성터’와 같은 공간으로 시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돌아가고 회복하고 싶지만 도달할 수 없는 공간과 비극적인 현실의 시간에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기행시를 쓰게 된 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새로운 모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향한 접근방법이었던 것이다.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풍요로운 기억 속 공동체 세계를 재구성하며 강한 회귀 의식을 보인 󰡔사슴󰡕에서 와는 달리 직접 그 공간을 찾아 나선 여정에 오르게 되며 그 결과물로 기행시편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기행시편들은 ‘그의 초기시가 고향탐색으로 일관되어 온 것과는 다른, 떠돌이 시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형식과 내용 두 측면에서 모두 󰡔사슴󰡕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또한, 기행시편의 두드러진 특징을 들자면 자신의 가난과 피폐함을 ‘자신이 유랑하는 지방의 일반 민중들의 삶 속에서 재발견하면서 현실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걸러내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경험하고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이미 붕괴되고 상실한 이상공간을 찾으려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들 시편은 더 이상 동화적이지도 신화적이지도 않다. 현실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 성인화자의 부단한 여정이 있을 뿐이다.

2) 음식

1937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동해』에서 보이듯 그의 작품에는 미각에 대한 유별난 탐닉이 깃들어 있다. 그리하여 백석시 곳곳에 음식과 관련된 소재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김명인은 ‘백석 시에 풍요롭게 나타나는 음식물들은 풍족하지 아니한 현실적 삶의 역설적 상징’이라 하여 ‘이 유난스러운 음식은 그 세계 속에 사는 삶의 경제적 궁핍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음식물 자체가 시의 주요 소재인 경우도 빈번하다. 「북관(北關)」, 「선우사(膳友辭)」 외에도 「추야일경(秋夜一景)」, 「개」, 「月林장」, 「국수」 등이 이러한 성향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 속에서 음식물은 사물과 자아 혹은 세계와 자아, 고향과 자아의 합일을 가능케하는 모티브이고 그것은 설화, 민속, 전래적 습속, 유년의 민속놀이 등의 소재와 같은 비중으로 시 속에 자리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은 시 속에서 화해롭고 자족한 공동체를 세우는 소재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유랑의 시간들 속에서 낯선 풍물과 사람들, 혹은 단절된 세계 속에 그 자신이 외롭게 놓여있음을 자각할 때, 그가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하는 시도로서 행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동일화 된 삶의 기억을 반추한다든가(「추야일경(秋夜一景)」, 「개」, 「동뇨부(童尿賦)」, 「국수」)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는 (「탕약(湯藥)」, 「북신(北新)」) 그리고 낯선 인물들 혹은 사물들 속에서 자기동일성을 찾고자(「오리」, 「안동(安東)」) 하는 시도일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단절감 및 일체화 동일화된 양립적 세계의 매개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그의 시 속에서 음식물로 드러난다. 「북관(北關)」에서 그는 음식물을 통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각에 이르게 되며, 아울러 「선우사(膳友辭)」 같은 작품에서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주체인 시적 자아와 그 대상인 ‘가재미’나 ‘힌밥’이 같은 등위선상에서 의미화된다.

낡은 나조반에 힌밥도 가재미도 나도나와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무슨이야기라도 다할것같다
우리들은 서로 믿없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긴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탓이다
바람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소리를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들은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배우며 다람쥐동무하고 자라난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없어 히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하나 손아귀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없다
그리고 누구하나 부럽지도 않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같은건 밖에나도 좋을것같다

- 「선우사(膳友辭)」 전문


위의 구절에서 보듯 자신이 선호하는 음식물을 활물화하여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외로움과 욕심 없음 그리고 정결함을 서로의 공통분모로 하여 ‘힌 밥’과 ‘가재미’와 시적자아 ‘나’는 동일화되며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같은건 밖에나도 좋을것같다’와 같은 구절에서 보이듯 세상이란 개방적인 공간과는 대비되는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3) 향수(鄕愁)

방랑객으로 돌아다니며 음식을 접하게 되면 고향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타지의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가난한 마음은 계속되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욱이 백석이 생각하는 고향은 단순히 어떠한 한 감각을 채우는 고향이 아닌 유토피아적인 성향이 짙다. 그것은 시인 자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에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방랑하는 생활은 장소의 개방성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단절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그의 시 「적막강산」에서 잘 보여진다.

오이 밭에 벌 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 솔 밭에 뻐꾸기 소리
잔 솔 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요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석 벌소리 속에 나 홀로

여 긴긴 하로 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 「적막강산」 전문


이와 달리 폐쇄적인 공간은 시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현재보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게 한다. 「선우사(膳友辭)」, 「산곡(山谷)」,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국수」 등)은 세상(현실)과 대립되는 곳이며 궁극적으로는 「국수」의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 혹은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으로 표상되는 초기 시의 유년의 고향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이러한 의미로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를 사랑 시가 아닌 유토피아를 그리는 시로서 읽게 된다면 작품에서 나오는 ‘산골’과 같은 폐쇄적인 공간은 결국 귀향의식과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랑하는 ‘나타샤’와 시적자아 ‘나’가 갈등과 고난 없이 화해롭게 살 수 있는 세계 ‘산골’로 가고자 하는 소망은 당대의 시대적 질곡 속에서 무너진 공동체 이전으로 향하는 유토피아(고향)에 대한 회귀의 의지인 것이다.

4) 타자 발견의 통찰적 시선

백석 시의 특징은 기억으로 그려지는 과거의 풍물뿐만 아니라 시대를 표상할 수 있는 현재의 토속적인 풍경과 인물에 대한 체험적인 시편들도 다수를 이룬다. 이런 시에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눈에 보이는 객과적인 대상과 타자의 발견에서 확산되어 현실에 대한 통찰적 시선으로 이어진다. 인물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시편들에서 엿볼 수 있는 통찰적 시선으로 시적 화자는 타인의 발견을 통해 자신의 타자성을 드러낸다. 이것의 의미는 레비나스의 ‘타자성’에 대한 개념으로 보충된다. 타자 철학의 핵심은 타자가 나의 기원이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타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책임성을 나에게 요구한다. 내가 타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곧 자기를 찾는 길이다. 타자는 나의 방식대로 제한될 수 없는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이것에 비추어 백석 시를 해석해 본다면 그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타자를 발견하는 통찰적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까지도 대상화시킨다. 이러한 시에서 백석은 사실적인 재현을 중시한 서구의 원근법과는 달리 동양의 산점투시 기법을 도입하여 정서라는 관념을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백석 시에서 발현되고 있는 주된 정서는 쓸쓸함이다. 그가 시에 담아내고 있는 이 쓸쓸함의 정서는 당대 지신인의 내면에 대한 표상으로 볼 수 있다.
쓸쓸함은 ‘주체와 대상의 거리감’에서 발생한다. 거리감은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는 대상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보는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은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머물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과거 또는 미래의 산물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그의 시 「팔원(八院)」을 예시로 그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차디찬 아침인데
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게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 가치 진진초록 새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밧고랑처럼 몹시도 터젓다
게집아이는 으로 간다고하는데
자성은 예서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야케 얼은 유리창박게
가튼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사람도 눈을 씻는다
게집아이는 몃해고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러케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얼어서
찬물에 걸례를 첫슬 것이다

- 「팔원(八院)」 전문


「팔원(八院)」에서 보는 주체는 텅 빈 차안에 앉아 나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여자아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시선은 현재의 눈에 보이는 모습과 시적 화자가 상상으로 보이는 과거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진진초록 새저고리를 입고”는 여자 아이의 “손잔등이 밧고랑처럼 몹시도 터”져 있는 것에서 어린 나이에 겪었을 고생스러운 삶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시간을 역행하여 여자 아이의 과거의 시간을 상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는 장면, 걸레질을 하는 장면, 아이를 돌보는 장면들이 결합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는 불행한 시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 아이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통찰은 일제 강점하에 있던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과 아픔을 발견하는 통찰로 확산된다. 여자 아이를 중심으로 인식되는 당시 식민지 현실에 대한 통찰적 시선이 시적 화자 자신을 “텅 비인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사람도 눈을 씻는다”라는 대목으로 백석은 여자 아이와 시대현실, 그리고 대상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쓸쓸함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쓸쓸함은 나라를 잃은 식민지 지식인이 갖는 고민과 아픔의 반영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초기 시에서 보이던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백석 시인은 자신과 시적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다 깊은 헤아림의 정서로 타인과 자신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절망, 촌에서 온 아이 등에서 초기시와 마찬가지로 어리고 연약한 인물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노래되고 있다. 아울러 팔원의 경우는 주로 객관적 묘사나 서술로 일관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유형에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와 같은 연민의 정서는 가무래기의 악, 멧새소리, 북망에서, 두보나 이백같이, 힌 바람벽이 있어 등으로 오게 되면 빈궁하고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자기연민이나 부끄러운, 자기 위안의 정서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촌에서 온 아이어
촌에서 어제밤에 승합자동차를 타고 온 아이여
이렇게 추운데 웃동에 무슨 두룽이 같은 것을 하나 걸치고 다래두리는 쪽 밝아벗은 아이여
뽈다구에는 징기징기 앙광이를 그리고 머리칼이 놀한 아이여
힘을 쓸랴고 벌서부터 두 다리가 푸둥푸둥하니 살이 찐 아이여
너는 오늘 아침 무엇에 놀라서 우는구나
분명고 무슨 거짓되고 쓸데없는것에 놀라서
그것이 네 맑고 참된 마음에 분해서 우는구나
(......중간 생략.....)
촌에서 와서 오늘 아츰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너는 분명히 하눌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군이 될 것이로다

- 「촌에서 온 아이」 부분


백석은 기행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시에 많이 담아내고 있다. 「촌에서 온 아이」에서 묘사되어 있는 아이도 백석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백석은 촌에서 온 아이를 통해 본래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삶, 있어야 할 곳에서 버려진 존재, 주인이 주인으로 살지 못했던 그 시대 현실을 통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촌 아이에게 보내는 시선은 곧 백석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돌아오며 자기 모습의 대상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는 곧 타자화된 백석 자신의 모습이며 나아가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의 타자화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분명히 하눌이 사랑하는 시이나 농사군이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은 곧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며 우리 민족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가치가 된다. 자연을 닮은 시인이나 농사군의 마음은 “맑고 참된”이다. 촌에서 온 아이가 본래의 품성을 영원히 지키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은 백석 시인 자신이 당대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자리인 것이다. 백석의 시에서 나타나는 이 쓸쓸함의 정서는 바로 이 “맑고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4. 결론

백석은 기행으로 인하여 발견되는 토속적인 소재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근원에 대해 재확인하려 했으며 외부로 인해 무너진 공동체의 복원을 소망한다. 그의 시에서 빈번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은 백석 시 세계의 일관된 화두라고 볼 수 있으며, 후기 시 세계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즉 식민지 시대 파편화된 공동체의 양상이 시적 상황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의 기행시는 단지 백석이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쓴 것이라기보다 자기 스스로가 유랑민으로 자처하여 기행 안에서 발견되는 민족이 겪는 현실과 아픔을 발견하여 그것을 원래대로 재건하려는 것이 더욱 우선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백석의 현실인식은 시적 화자로서의 ‘나’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이루는 근원이 되어 서로가 연결되는 지점에 이른다. 이러한 점에서 백석 시의 철학적인 의미를 빌려오자면,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성과 그 의미가 상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시는 『사슴』을 전후로 ‘관찰과 사실의 세계’에서 ‘인식의 세계’로 변모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 풍경과 사물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세계도 아니다. 과거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이미 사라진 과거의 시간과 생활을 환기시키는 매개물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대상으로 발전된다. 이러한 변모는 유랑의 고달픈 삶과 상실감으로 집약되어 「힌 바람 벽이 있어」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며, 이것을 통해 백석은 그의 이상향과 정체성을 확장시킨다.
그는 이러한 시 세계 가운데 자신의 이상향적 정체성을 「남신의주 유동 박사봉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표현한다. 혹자는 ‘자신의 뜻이며 힘으로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는 시대’에 시인의 이러한 정체성의 표현은 다소 수동적이고 체념적이며 소극적이라 비판하는 논문도 적지 않다. 또한 백석의 시 세계는 소재적인 차원에서 머물 뿐이지 시대적, 민족적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확산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지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민족적 정체성과 그 감각을 잃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토속적인 소재 안에서 발견하여 일제 말의 ‘우리’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그 자체가 불운한 시대를 저항하는 그만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리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부분


그렇기에 신의주의 한 좁은 방에 유폐되어있는 시인은 자신의 쓸쓸하고 비참한 상황을 무기력하게 체념하는 운명론자로 한정시켜 놓을 수는 없다. 이의 논지에 힘을 더하기 위하여 말년의 루소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글을 인용해 보려 한다.

내 모든 노력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없이 번민에 시달리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결심, 즉 필연에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내 운명에 순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체념이 내게 가져다준 –힘들고 보람없는 저항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해온 그 고역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마음의 평정을 통해 나는 그 동안 내가 겪어온 모든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온갖 미지의 공포에 대한 불안과 희망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상황을 내가 하루하루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가지 습관, 곧 체념으로 충분하다. 나의 체념으로 그들의 감정은 계속 둔화되어 그 감정이 더 이상 활기를 띠게 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증오 섞인 어행이란 언행을 모두 동원하여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온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였다.

시인은 힌 바람벽 앞에서 음식을 떠올리고,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떠나버린 연인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다시금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과 같은 구절에서 보이듯 자신의 현재적인 삶의 모습으로부터 일탈해 나갈 수 없으며 자신의 생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허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의 운명론적 관점으로 체념해 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의미로 자기 밖의 세계에 어떤 희망도 잔존시키지 않는 고독과 불행 앞에 마주할 때 비로소 이 체념의 감정은 시작되는 것이다. 백석의 후기 시 세계에 나타난 체념 또한 그가 진정으로 불행하고 고독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것을 방관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직면하여 몸소 느끼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그러나’라는 사유의 전환으로 시대의 아픔을 생각하며 그가 구현하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지켜나가야 할 ‘갈매나무’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백석 시인의 근원적 존재를 찾아가는 시 쓰기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시적 세계의 영역을 넓혀 가는 재원이 되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겠다.







※ 참 고 문 헌 ※


1.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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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manuel Lecinas, 『시간과 타자』, 강연안 옮김, 문예출판사, 1996,
- Jean-Jacques Rousseau,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김중현 옮김, 한길사, 2007.

2.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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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요환, 「백석 기행시편 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18호, 한국근대문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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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문학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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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미, 「‘근원찾기’를 통한 본성적 삶의 지향」, 『한국언어문학』 제62집, 한국언어문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