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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과 정지용의 초기 시 세계- 정지용 문학관을 다녀와서

by noobim 2021. 4. 29.

1. 들어가며

 

  발제를 위해 정지용의 작품들과 그에 관한 논문을 보다가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였다. 봄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마음은 울렁거렸고 드글거리는 활자들이 나의 눈을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좋은 수가 없을까를 생각했다.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핑곗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정지용 문학관이 생각났다. 곧바로 운전대를 잡고 문학관이 있는 그의 고향 옥천으로 향하였다. 평일의 문학관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코로나 시기에 더욱 안전한 연구 현장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문학 기행을 서둘렀다. 책 한 권을 들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내리 달려 도착하여 보니 예상대로 사람은 없었으며, 문을 열어보니, 정지용의 마네킹만이 그의 작품 카페 · 프란스에서 처럼 꾿 이브닝!이라는 인사말로 나를 반겼다.

문학관에서의 전시를 참고하여 그의 시의 흐름을 정리하자면, 그의 시는 대개 3기로 나뉜다. 초기의 모더니즘적 경향, 중기의 종교 시편, 후기의 전통주의 및 동양적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산수시가 그것이다. 이러한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의 시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단순히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발제에서는 정지용 문학관 기행에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참고한 여러 논문들을 겸하여 한국 현대시의 흐름 사이에서의 정지용의 위치와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초기 시들의 특징을 그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이후 시의 동향과 결론으로는 정지용 시인이 모더니즘을 받아들었던 필연적 이유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한국 현대 시의 흐름 사이에서의 정지용

 

  근대 문호 개방과 서구 문명의 유입은 사상과 생활의 패턴에까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문학도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었다. 본디 한국의 시는 율격과 리듬을 가진 시조와 같은 정형시였다. 최남선을 필두로 한 ()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현대시의 과도기는 시작되었고 2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의 시문학은 낭만주의를 쫓아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같은 산문시와 자유시로 발전되게 되었다. 이는 한국 현대시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김춘수가 한국 현대시의 형태론에서 기술한 대로 운율과 형태로부터의 자유를 추구와 함께 한국 문학 사조의 자유성을 넓혀가는 발자취라 말할 수 있다. 이어 그 시기를 지나와 드디어 우리 시문학사의 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 문학의 문을 여는 정지용의 시대가 도래한다.

모더니즘은 기존 전통과의 단절을 주장하며 등장한다. 부르주아적 예술적 관습에 대해 저항하는 미적 근대성으로서의 모더니즘은 전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미학적 전략으로 형식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적 근대성으로서 모더니즘의 특징은 한국 모더니즘의 출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우리의 모더니즘은 일제에 의해 자본주의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시화와 공업화 그리고 소외 현상과 사물화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근대문학은 도시화 과정 속에서 변화된 환경과 그 변화된 환경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도시의 생성과 발전은 일상 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에도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사물화와 소외 현상을 그리고 있다면, 우리의 경우 일제의 극렬한 수탈에 의한 궁핍과 인간적 파탄 등 피폐한 현실 상황이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이러한 식민지적 상황은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다른 우리 모더니즘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문학적 시도는 이장희, 정지용, 임화의 시적 실험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다른 여타 문인들과 비교하여 정지용과 같은 경우는 감정의 절제를 통한 이미지즘과 동시에 형태 파괴를 통한 전통적인 시 형식의 파괴를 보여줌으로써 미래주의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5311kbs1에서 방영된 인물 현대사-시대에 갇힌 천재 시인 정지용에서 연세대 석좌교수 유종호는 정지용이라는 선행시인이 없었다면 다른 여타 시인들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 청록파 시인들을 처음 발굴하여 추천한 이는 정지용이다- 그리고 김춘수와 같은 시인들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단순히 한분의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 정지용 그 자체가 한국의 시문학사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가 우리 시문학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영양분을 받아 한국의 현대 시는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을 문학관에서는 한국 현대 시의 흐름과 정지용이라는 현판으로 프리젠테이션의 사진과 같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 궁금증이 드는 문제가 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문인들은 이토록 많은데 그의 문학은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이러한 생각이 들던 중에 프레젠테이션의 사진과 같이 그가 일본 동지사 대학 시절 썼던 논문 원본이 눈에 띄었다. 문학관에 비치된 그의 논문은 블레이크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The Imagination in the Poetry of William Blake)이라는 주제 아래 전문이 영어로 쓰였다. 단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말로 쓰는 것도 어려운 논문을 그 당시 영어로 전문을 썼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이 있을 뿐 아니라 서구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특별히 블레이크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로 낭만주의 사조를 따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그의 시는 참으로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또한, 작품 가운데에서는 워낙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아 현재까지도 국내에 블레이드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학자들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또한 정지용은 일본 최고의 시인 기타하라 하큐슈라는 인물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근대 시인 대부분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시는 감각적인 시의 출발로 아무도 표현하지 않으려 했던 것까지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구현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지용은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어 내면의 정서를 표현하는 하쿠슈의 시를 즐겨 읽었고, 그에게 편지도 보내 기고할 기회를 얻는다. 그의 시는 하쿠슈와 그의 후배 문인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유학 시절 그는 이미 일본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지만, 그의 뜻은 일본 문단에 있지 않았다. 다만 이것들은 정지용이 한국 근대 모더니즘 시문학을 열 수 있도록 하는 재료이자 징검다리의 역할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는 오직 우리 말을 다듬어 더욱 아름다운 우리 시를 쓰는 데 있었으며, 그가 교단에 서 있을 때에도 자신은 조선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3. 작품 내 시어들을 통해 알아보는 정지용의 초기 시 세계

 

1) ‘바다에 대한 동경

 

  정지용의 시에서는 바다를 비롯한 호수, 시내 등과 같은 물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생명력 그리고 여성성과 내적인 연관성이 있고 정지용 뿐 아니라 모더니즘 문학 안에서는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바다라는 것은 근대라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일찍이 서양이 동양을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식민지 청년 지식인이 지닐 수 있는 무한에의 동경이며 이 시대에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새로운 문명의 땅을 딛을 수 있게 하는 필수 불가결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바다라는 것은 원초적이면서도 새로운 물결의 끊임없는 도래를 의미하고, 모험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의 인도를 끌어낸다는 측면에서 정지용에게 바다라는 시어의 채택은 식민지의 현실에서 보다 나은 새로운 공간이나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구가 형상화를 이루었다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그의 초기 시에서 지도, 甲板, 겨울, 갈메기, 海峽등과 더불어 바다1에서 바다9에 이르기까지 연작시의 형태로 바다에 관한 시편을 여러 편 창작하는데 이는 그의 전반 창작에서도 동일한 주제로 가장 많이 쓰인 것으로 특정적인 관용구와 회화성으로 바다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포탄으로 뚫은듯 도그란 선창으로

눈섶까지 부풀어 오른 수평水平이 엿보고,

 

하늘이 함폭 나려 앉어

큰악한 암닭처럼 품고 있다.

 

투명한 어족魚族이 행렬하는 위치에

훗하게 차지한 나의 자리여!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라ㅅ속 같이

소란한 무인도의 각적角笛을 불고 ─

 

해협오전두시海峽午前二時의 고독은 오롯한 圓光을 쓰다.

설어울리 없는 눈물을 소녀처럼 짓쟈.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세여!

 

항해는 정히 연애처럼 비등沸騰하고

이제 어드메쯤 한밤의 태양이 피여오른다.

 

- 「海峽(해협)」 전문

 

  이처럼 정지용에게 있어서 바다의 이미지는 새로운 세계와 시간으로의 열림이다. 이 열림은 공간에 대한 탈출이며 지식과 문명으로 가닿는 시간의 모험이며 이러한 문학적 추이들은 식민지 현실이 처하고 있는 불완전한 공간에 대한 자아 욕망의 늘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海峽(해협)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다와 함께 생동하며 존재하는 것들은 무의식적 자아의 욕망을 표면으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 도시에서 마주한 근대적 산물들의 민낯들

 

  그는 1926년 일본에서 창간된 學潮카페 · 프란스, 슬픈 自畵像, 爬蟲類動物등을 비롯하여 新民, 文藝時代, 朝鮮紙光에 연이어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주목을 받는다. 그의 초기 시를 살펴보면, 대체로 카페, 기차, 전등, 마차, 파라솔, 곡마단, 넥타이 망토, 잉크, 곤돌라, 보헤미안, 마당 등과 같은 근대 문물과 외래어를 시 속에 구현함으로 김소월과 같은 낭만주의 사조의 시인 등에게서 볼 수 없었던 전통성과는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이러한 외래적 산물들을 시어로 택하여 시를 썼다는 것을 우리의 상황으로 견주어 말해 본다면, 2000초기 당시 출몰한 미래파 시인들의 시들을 감상하는 일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근대적 산물들을 통하여서 우리 시의 자리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그가 도시에서 마주하는 아래의 시어들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 기차와 시계

 

  일제 식민지 시대에 물자를 나르기 위해 그들이 공들여 발전시켰던 것은 다름이 아닌 운송수단의 발달이었다. 식민지 조선 가운데 나는 물자와 식량들을 본국으로 빠르게 운반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 덕에 철도산업의 발전을 이루었고, 이전과 달리 공간의 이동이 용이해짐에 따라 영토의 통제 범위가 확장되게 되었다. 이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분할하는 시계라는 신문물도 발명하게 되었다. 사람이 바빠진 것은 다름 아닌 이 시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기차의 속도와 시계의 정확성은 근대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지용의 시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어딘가 고장 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거먼 연기와 불을 배트며/소리지르며 달어나는/괴상하고 거-창한 爬蟲流動物.//(생략)//나는 나는 슬퍼서 슬퍼서 心臟이 되구요.//여페 안진 小露西亞 눈알 푸른 시약시/「당신은 지금 어드메로 가십나?」//…털크덕…털크덕…털크덕…//그는 슬퍼서 슬퍼서 膽囊이 되구요//저 기-드란 쌍골라는 大腸./뒤처 젓는 왜놈은 小腸./「이이! 저다리 털 좀 보와!」//(생략)//赭土 雜草 白骨을 짓발부며/둘둘둘둘둘둘 달어나는/굉장하게 기-다린 爬蟲流動物.

 

- 「爬蟲流動物」 부분

 

  시인은 기차를 기이한 파충류동물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동물은 전혀 얌전하지 않다. ‘식거먼 연기소음들을 발산하며 무엇인가를 집어 삼길 듯 질주한다. 이 동물은 근대라는 놈으로 그러한 문명이 발전된 근대에 탑승한 나를 비롯해 거기에 탄 승객 모두가 가고 싶지 않은 길에 어찌할 수 없이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 기차는 근대에 대한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정지용은 근대적 산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낯설게 바라봄으로 그 사물을 재구성화 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근대성은 슬픈 기차’(爬蟲流動物, 슬픈 기차)무서운 시계’ (무서운 시계)가 되어 부정적으로 폐기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는 문명의 중심지인 도시를 슬픈 도회’(幌馬車)로 인식하는 시인의 식민지 근대에 대한 탈식민적 경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2) 이국 카페의 안과 밖

 

옴겨다 심은 종려棕閭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 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벨레 먹은 장미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

 

『오오 패롵 (鸚鵡) 서방! 꾿 이브닝!』

 

『꾿 이브닝 !』 (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밤에도

경사更紗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이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 「카페 · 프란스」 부분

 

  카페는 대표적인 근대적 공간이다. 또한 프란스라는 명칭은 서구에서 가장 근대화한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발표된 당시 카페의 밖과 안을 구분하면 1연과 4연 그리고 5연과 10연으로 나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19266월 이 시를 學潮에 발표하고 전체 10연 중 뒷부분의 5연만을 일본어로 번역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시어는 장명등이다. 이 시어는 카페 밖의 공간성을 드러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카페를 둘러싼 밖의 공간은 일본의 실질적인 근대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에서 빗두른머리와 벌레 먹은심장, 그리고 온몸이 젖은몰골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 근대 공간을 배회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이는 부조화된 시대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근대라는 비정상성, 비합리성, 탐욕성, 혐오성 등을 드러낸다.

5연에서부터는 장면이 바뀌면서 카페 프란스의 밖을 배회하던 들은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앵무새와 안부를 주고받는 들 중 하나로 카페 프란스 안에서는 아모것도 아닌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앵무새 한 마리가 패롵 서방!’이라 말하며 흥미롭게 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앵무새는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투영으로 제국의 근대를 흉내 내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성향과 닮은 구석이 있다. 여기서 꾿 이브닝 !이라는 안부는 투영된 자아가 보내는 에 대한 연민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화려하게 치장된 更紗 커틴아래서 울금향 아가씨는 이 공간 안에서 피곤함을 느끼며 졸고 있고, 또한 이곳에서 나는 나라도 집도 없의 식민지적 상황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 안에서의 화자는 식민지인의 위치에 대한 동질감과 같은 위로를 이국종 강아지에게 느끼며 내 발을 빨어다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앵무새튤립이국종강아지는 근대라는 공간 안에서 소외되는 존재, , ‘나라도 집도 없는나와 동질성을 가지는 존재이다.

이처럼 알 수 없고 낯선 근대 문물들이 만들어 낸 거리에서의 카페의 안는 더 이상 화자의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아니다. 다만, 피식민지자들의 슬픔이 거리라는 밖으로 향하여 방랑할 뿐이다. 정지용 또한 이 시를 통해 근대의 것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로 인해 빚어진 대리석 같은 도시의 차가운 이면을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3) ‘유리창너머의 세계

 

유리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불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닥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유리창(琉璃窓) 1」 전문

 

정지용의 위의 시에서 보여지듯 유리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라는 언급에서 안쪽에 있는 화자는 죽음을 차고 슬픈 것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존재이다. 그에 반하여 창밖은 새까만 밤과 물먹은 별의 세계이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밖의 세계를 안쪽으로 들여놓기 위한 화자의 바람이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세계는 유리 안쪽의 화자가 갈 수 없는 세계로 형이상적 죽음 너머의 세계와 차단되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이곳에 살고 있는 창 안쪽의 화자는 창을 둘러싸고 있는 밖의 세계를 지향하는 존재이다.

 

내어다 보니/아조 캄캄한 밤,/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돌아서서 자리로 갔다./나는 목이 마르다./또, 가까이 가/유리를 입으로 쫏다./아아, 항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소증기선小蒸汽船처럼 흔들리는 창,/투명한 보라ㅅ빛 누뤼알 아,/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나는 열이 오른다./뺌은 차라리 연정戀情스레히/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마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머언 꽃!/도회都會에는 고흔 화재火災가 오른다.

 

- 「유리창(琉璃窓) 2」 전문

 

유리창 2에서 안쪽에 살고 있는 나는 항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이 금붕어는 잣나무가 하늘을 향해 켜올라가는 밖을 지향하며 입으로 유리를 쫏고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는 목이 마르다. 별도의 물도 없는 안쪽은 소증기선처럼 흔들리고 있다. 마치 난파된 배를 타고 있는 는 근대 문명에 갇힌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처럼 난파된 문명의 배에 간신히 몸을 실어 생명을 구했지만, 물이 없고, 금붕어처럼 갑갑하고 별이 없어 지향점을 찾을 길 없는 근대인들은 결국 도회의 화재처럼 몰락하는 문명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시인은 시를 통해 예고하고 있다.

 

3)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전근대와 근대의 과도기에 청년기를 살았던 정지용은 그 시대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했던 지식인이다. 이를테면 바다건너기, ‘도시로 향하기, 식민 시대의 제국주의에 합류하기의 일환으로 일본에 유학 가기 등을 통해 신문물을 접하며 서구 지향성의 삶을 동경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것은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시대의 아픔과 차가움이었다.

정지용의 초기 시를 보고 있자면, 가부장적 공동체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향수(鄕愁)에 발목이 잡혀 있으면서도 일본의 근대 풍경에 마음이 끌리는 분열증적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무의식적 심층에는 고향이라는 피의 부름에 마음이 조이지만 의식의 차원에서는 근대적인 것을 욕망하고 있다. 다음의 시가 바로 그 같은 경우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꽁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 전문

 

사람에게는 회귀의 본능이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았어도 아무것 없어도 날 몸인 나를 처음으로 넉넉히 받아주었던 곳이 고향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시 가운데 정지용의 고향은 상실되어 있다. 겉으로는 있기는 있으나, 다시 찾은 고향은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줄 내재적 속성이 사라진 장소가 되었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능력을 상실한 공동체이다.

또한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울고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는 고향의 자연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가 주는 휘황찬 미래에 대한 약속과 미래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따라서 아득한 기억과 시간을 거슬러 상처 없는 무구한 세계를 그리워하는 심리 이면에는 근대 가치와 규범을 재인식하는 과정이 전유되어 있다.

 

4. 초기 시 이후의 흐름 - 근대 극복을 위한 여정

 

  모더니즘에 의해 도회의 감수성을 노래하며 문명의 아들로 자처한 당시의 시인들은 이제 자본주의가 갖는 병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근대적 사유가 인간을 해방하고 근대적 인간을 구성한다는 인식은 이제 비판과 저항에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자연에 대한 탐색과 천착은 근대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토대로 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라는 목소리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바다에 대한 동경과 근대 문물을 바라보았던 정지용도 그의 후기 시의 나타나는 작품으로 그 입장을 함께 한다. 그는 첫 시집 鄭芝溶詩集(1935) 이후 1941白鹿潭을 발표하게 되며, 장수산1·2, 백록담, 비로봉과 같은 작품을 수록하게 된다. 찬란한 도시 문물을 비추어 차가운 시대의 비애를 고향으로의 회귀를 갈등하던 초기 시에 비해 그는 중기와 후기로 넘어가면서 종교시편과 자연 산수시와 같은 초현실적인 소재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서구 지향적 관점에서 동양적 사상으로의 회귀이며 이제 정지용 시인의 시선은 바다를 등지고 으로의 공간성으로 전환되어 나아가게 된다. 이는 근대라는 양식에 대해 허구성을 인식하고 참다운 민족의 정체성에 직면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마주하며 나아간 그의 시 세계의 방향성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지용의 의지는 그의 시 뿐 아니라 詩論을 주장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는 해, , 산넘어 저쪽, 三月 삼짓날, 딸레, 산소, 종달새, ,할아버지, , 산에서 온 새, 바람, 별똥등의 작품에서 민요조의 시를 아름다운 우리말을 통해 노래하고 있는 점은 단순히 그가 외래의 것을 받아들려 하기보다는 더욱 성숙한 단계를 이르려는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문화 이식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반대로 그것은 내부의 성숙으로 이어져 새로운 문화 창조의 형태와 본질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지용에게 시 쓰기는 곧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5. 나가며

 

  지금까지 초기 정지용의 시 세계와 그 이후의 흐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때까지의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저번 주 발제 내용으로 알고 있었던 모더니즘의 정의가 정지용에게 맞추어 놓기란 어불성설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이유는 모더니즘이 전통의 인습과 단절을 표방하기 위해서 이 사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물론 정지용 시인도 모더니즘의 사조의 문물들을 동경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나 오히려 역으로 근대의 비애와 고독감을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고발하고 있는 지점들을 또한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조선의 셰익스피어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보았을 때 그가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비단 제국주의의 앵무새와 같은 존재로 남으려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허물어진 고향 공동체의 재건의 대안이 더 이상 근대 문물의 모더니즘 사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의 시의 방향성을 확장 시킨다. , 식민지 지식인으로 살면서 마주한 근대의 차가운 면모 안에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 이것을 발돋움 삼아 다시금 허물어졌던 조국의 이상적인 모습을 종교시 및 산수시로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단순히 모더니즘을 받아들이는 것에만 머물렀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모더니즘은 수용-좌절-재인식이라는 과정으로 극복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통하여 무너진 고향, 조국을 재건하려는 모습에서 정지용을 모더니즘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의 시 세계를 한정적으로 제안시키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문학관을 나섰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그의 생가에 들렸다. 이상하게도 초가집으로 되어 있는 생가 앞에는 일제 말 황국신민화를 외치며 충성을 강요하는 맹세문인 황국신민서사비가 누여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의아했다. 왜 여기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일까? 아무런 생각 없이 밟고 싸리문을 지나가니 초가집 한 채가 이국종과 같은 아그배 꽃나무와 함께 생경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었다. 왜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초가집 한 채를 꾸며주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발제를 준비하면서 일제 말기에 출현했던 모더니즘의 차가움과 시대의 아픔이 무너진 고향을 재건하고 더욱 깊은 내재적인 이상으로 향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물론 시대의 아픔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 동선과 풍경이 그의 시선으로 이해가 되었다.

발제의 마침표를 찍기 전, 다시금 턱을 괴고 아그배 꽃나무 옆 그의 고향 집을 생각해본다. 창가에 흰 나븨 한 마리가 나에게 휘하고 스쳐 지나갈 것만 같은 저녁 무렵이다. - 모두들, 꾿 이브닝!

 

 

* 참고자료

 

1. 단행본

 

1) 김윤식, 한국문학의 근대성 비판, 문예출판사, 1993.

2) 정지용, 달과 자유, 깊은샘, 1994.

3) 김춘수, 한국 현대시 형태론, 김춘수 시론 전집 1, 현대문학, 2004.

 

2. 학술논문

 

1) 권경아, 192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전개양상 연구, 어문연구 85, 어문연구학회, 2015.

2) 박주택, 정지용 시에 나타난 근대성 연구, 한국시학연구 53, 한국시학회, 2011.

3) 최윤정, 근대의 타자담론으로서의 정지용 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50(151),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