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 소설 다시 읽기

윤흥길의『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by noobim 2020. 8. 20.

* '희망'을 향한 발걸음-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 

 

1. 줄거리 요약

 

  초등학교 교사인 ‘나(오 선생)’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개발이 진행 중인 한 도시 주택가에 집을 장만하고 문간방에 세를 놓는다. 이 방에 ‘권 씨’가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온다. ‘권 씨’ 가족은 통보도 없이 이사 오기로 한 날보다 앞서 이사를 와서는 약속한 전세금마저 다 내놓지 않는다. 게다가 ‘권 씨’의 아내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다. ‘권 씨’ 이불 보따리 하나와 취사도구뿐인 궁색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여러 켤레의 구두만큼은 소중히 여기며 깨끗하게 닦아 놓는다. 그러다 '권 씨’를 우연히 만난다. 그날 밤 술에 취해 들어온 ‘권 씨’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분양받았던 땅 문제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다 소요의 주동자로 몰려 징역을 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얼마 뒤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던 ‘권 씨’의 아내는 진통이 길어져 돈을 빌려달라고 학교에 찾아 왔으나 ‘나’는 거절하고 만다. ‘나’는 그에게 전세금을 빚지고 있음을 깨달음 간신히 10만원을 빌려 산부인과로 가서 수술비를 내어주고,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집을 나갔던 ‘권 씨’는 그날 밤 강도로 ‘나’의 방에 침입했으나 ‘나’는 그가 너무도 어설픈 강도이며 바로 옆집 ‘권 씨’라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권 씨’는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자 마지막으로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권씨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끝내 '권 씨’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행방 불명이 된다.

 

2. 시점과 서술 방식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관찰자 ‘나’를 통해 주인공 ‘권 씨’의 가난한 서민의 삶을 형상화 하고 있다. 주인공 ‘권 씨’의 성격은 ‘나’가 관찰한 범위 내에서 외부로 노출된 행동이나 발언을 통해서 파악된다. 서술자인 ‘나’에 관한 이야기는 주관적이지만, 주인공 ‘권 씨’에 대해서는 관찰자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된다. 또한 작품 중의 ‘나’는 소외된 하층민의 삶을 외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의식의 분열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이러한 중간층의 계급적 속성을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소외되고 병든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표현된다. 사건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 않고 ‘나’가 성남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적절해 교차하면서 서술하였고 ‘나’와 ‘권 씨’의 대화를 통해 ‘권 씨’가 광주 대단지 사건에 끼여들게 된 사건을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작가는 과거의 한 사건을 이야기 해주기보다는 현재 ‘권 씨’의 입장에서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이런 서술 방식은 당시 한국 도시 빈민층의 시대적 현실을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3. 구두의 의미

 

  처음에 소설 속의 오선생과 그가 마주치는 장면에서 단촐한 살림과 후줄근한 여름옷과는 영 안 어울리게 그의 구두는 제법 신품이었다고 기술한다.

 

‘내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동안에 사내는 슬그머니 한 족 발을 들더니 다른 쪽 다리 바지 자락에다 구두코를 쓰윽 문질렀다. 이어서 이번엔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먼지가 닦여 반짝 반짝 광이 나는 구두를 내려다 보면서 비로소 그는 자기 구두코만큼이나 해맑은 표정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틀림없이 재고 정리 바겐세일 바람에 하나 주워 걸쳤을, 지그재그 무늬의, 때 이르고 유행 지난, 후줄근한 여름옷과는 영 안 어울리게 그의 구두는 제법 신품이었고 알맞게 길이 난 호사품이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권씨의 어울리지 않는 코디에 나 또한 많은 황당함을 담고 인물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나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는 엉뚱한 대답과 그 구두가 연결이 되는 걸까? 라는 단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읽어보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획일화된 시각이었다. -권씨의 이 엉뚱한 대답은 자존심이 아니라 그러한 학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씨를 도시 빈민층으로 남게 한 사회를 비판하고자 한 작가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자존심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 그 생각으로 구두의 의미를 찾는다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옹고집의 권씨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주인공인 ‘나’(오선생)는 이 순경의 말대로 ‘권 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걸요’ 라는 것에 불응하였을 것이며 친절한 이웃을 자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권씨에게 구두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러기 위해 권씨에 대한 다각적인 인물 해석이 필요하다. ‘권 씨’는 어쩌면 ‘나’ 같은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가는 길이 달랐다. ‘나’는 출세할 조짐이 농후한 동창들을 접할 때마다 속이 뒤숭숭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불평등하게 여기며 어쩌다 잘못 얻어걸린 것이 선생질이었다. ‘나’의 마누라도 어쩌다 얻어걸린 ‘선생 마누라, 선생 부인, 선생 사모님’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고질병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번듯한 집이었다. 성남의 땅을 사서 월세방을 놓고 따박 따박 나오는 월급쟁이로 소위 괜찮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불평등하고 괴롭다 한다면 ‘권 씨’에게는 안될 말이다. 권씨의 말대로 대학을 나왔고 출판사로 취직해 지식인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광주 대단지 사건’을 통해 지식인에서 노동자로 그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위원회 대표들과 면담을 피한 날에 그마저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일이 있고 난 후 원인도 모른 채 수갑을 차게 되었다. 결국 ‘권 씨’는 지식인도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닌 현실 앞에 막막한 도시의 빈민층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살길을 찾는 것은 다분히 중요한 일이었다. 옛말에 ‘좋은 신은 좋은 길로 데려다 준다’는 말이 있다. 그가 매일 같이 구두를 닦고 신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을 나온 그이지만 그에게 좋은 길이 필요했다. 이 현실을 뚫고 지나갈 단단하고 경쾌한 생활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권 씨’에게 구두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해석하기보다 막막한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희망의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오선생이 아침 인사 겸 농담 삼아 건네는 ‘구두를 팔 거냐?’ 라는 말이 ‘희망을 팔 거냐?’라는 말로 들렸기에 권씨의 냉소적인 태도는 정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윽고 다음날 권씨는 슬리퍼를 오선생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선생은 어떤 신발을 신고 있어도 이미 좋은 길에 들어선 사람이고 권씨의 ‘집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을 지니고 싶어해도 현실 앞에 어쩔 수 없는 ‘권 씨’의 모습이 잘 들어난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씨를 오선생이 잘 이해하게 된 배경은 그가 아이를 낳을 돈이 없어서 귀가하지 못한 집에 가지런히 정돈된 그의 아홉 켤레의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이다.

 

‘어떤 근거인지는 몰라도 구두 손질의 정도에 따라 그의 운명을 예측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구두코가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닦여 있는 한 자존심은 그 이상으로 광발이 올려져 있었을 것이며, 그러면 나는 안심해도 좋았던 것이다. 그때 그가 만약 마지막이란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새끼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가로막은 그것이 그에게는 대체 무엇으로 느껴졌을 것인가’

 

  이와 같은 대목을 바라볼 때, 그에게 있어서 구두는 자존심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희망의 아이템인 동시에 구두를 닦는 행위는 희망을 바라며 자식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 자 한 다짐이었기에 방으로 가는 문턱을 부끄러움이 남아 넘지 못한 것이라고 오선생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웃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누차 장담한 바 있는 이 순경에게 전화를 할 수 있던 것이다. 이것은 권씨의 희망을 이해한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4.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

 

  1970년대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낸 시기였다. 급속한 산업화의 전개로 부의 편중과 소외된 계층이 발생했으며, 독재정치와 민주화 투쟁 등으로 격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갈등과 혼란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작가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사회 현실의 소용돌이에 집중되었다.

  비록 이 소설이 70년대의 한국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공장 노동자의 현실이 일면적일지라도 소설 속으로 이끌려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등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시빈민과 지식인의 관계를 통한 소외된 사람들의 극단적인 삶의 양태를 살피려한 작품이며, 당시의 소외된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되 그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희망을 바라는 소시민의 의지를 주인공의 삶의 행적으로서 보여주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