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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윤동주 다시 읽기 (새가정사 문화 쌀롱 9월 원고)

by noobim 2020. 8. 21.

 

 9월, 무더운 여름을 담담히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라고 다짐하는 시인처럼 가을에는 더욱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깊어질 수 있을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것은 문학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시(詩)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 짧은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도

우리에게 많은 감명을 준다.

물론 어렵고 낯선 것이 시문학이지만,

이번 ‘문화 쌀롱’에서는

보다 낯익고 친숙한 ‘윤동주’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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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는 누구나 다 한번쯤은 접해 보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 아는 시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자리에 따라

시의 메시지가 변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나의 경우, 좋은 시들이 있으면 눈여겨 보다가 필사를 하는 편인데,

2017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이 계기가 되어 서점을 기웃거리다

전보다는 그의 시편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맞닿게 되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에는 31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

평소 그의 시라면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시인의 이름만 익숙하고 유명한 작품 외에는 다소 생소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의 서 있는 아리송한 이 청년의 마음을 알기 위해 나는 필사를 시작했다.

 

「서시(序詩)」를 시작으로 어릴 적 뜻 없이 외웠던 것이 기억나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펜을 들었지만, 그 감흥은 전혀 달랐다.

필사의 마침표를 찍을 때쯤 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펜을 놓고 얼굴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왜 이제야 윤동주를 다시 읽게 된 거지?’라는 자책감이 참 많이도 밀려왔었다.

 

그의 시를 한글자 한글자 눌러쓰면서 

아름다운 별과 같은 시어들이 어두운 내 마음을 밝혔다.

거기에 시인은 간결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기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읽는 이의 내면으로 다가와 마음의 더 깊은 성찰의 파장을 일으킨다.

그 파장으로 시인은 독자 간의 다른 시간적 거리를 뚫고 마음 한 곳 어딘가에 이르고

서로를 위로함으로 더 깊어져 가는 헤아림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별히 「아우의 인상화」에 대한 감상을 소개하면서 있었던 일화를 나누고 싶다.

더 깊은 감상을 위해 시 전문을 보여주고 공란을 만들어 두었다.

잠시 펜을 들어 따라 필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2018년에 부족하게나마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안수를 받았다.

안수식을 준비하다가 기념 수건에 넣을 문구를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좋은 사람, 좋은 목사가 되겠습니다”라는 글귀를 건네었다.

 

내가 갖기에도 남을 주기에도 부담스러운 문제의 수건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서슴지 않고 새기기로 한 이유는 그의 시가 내 마음에 살아 나를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물을 드리고

남은 수건을 가져와 화장실에 걸어놓으니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고 난 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건 속 그 문장이 나의 기도와 다짐이 되었고,

하루의 끝에서도 나를 점검해 보는 성찰의 물건이 되었다.

 

여전히 그 수건을 걸어 두었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질 그 날까지

내 마음 속 깊은 곳 어디쯤에 걸려져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나마 아주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가을,

이 성찰의 계절에 윤동주의 시편들을 다시금 읽어보고 필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주 작고 소소한 시작이지만,

분명 나를 깊어지게 할 인생의 문장 하나쯤은 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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