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 한번 씩 오는 날이면
어르신들을 상담해 드리는 게
내 일이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는 게 재미있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때로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통된 화두가 있다.
그것은
외로움과 고독
인생이 허망하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자식들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를
배우자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아무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쏟고 가면 어깨가 전보다 더
외소해지신다.
그래도 속은 시원한단다.
나보다는 크리넥스가 작은 위로라
말없이 한 두어장 건네어 드리고
다음에도 이야기 하고 싶으면
언제든 오시라 말씀드린다.
다독여 드리고 다음 일정을 보니
파릇한 20대 실습생에게 강의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강의실에서 기자재를 준비하는 동안
다짜고짜
"우리 선생님들 핸드폰에 어플 하나 깔아보세요"
"'페이스 어플'이라고 거기에 사진을 찍어 넣으면
나중에 자신의 미래 모습이 보이니까 한번 해볼까요?" 라고 했다.
보송보송한 20대 대학생들은
재미있다고 난리도 아니다.
"니가 더 늙었네!"
"그나마 나는 괜찮네!"
이러면서 말이다.
소란스러운 틈을 타다
하나 질문을 건네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어때요?"
"그때 쯤엔 어떤 감정을 가질 것 같나요?"
한 실습생이 손을 든다.
"......음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그 날은 와요."
"쓸쓸해지고 고독해질 날 말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까요?"
"조금 더 인간답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더 다정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역지사지예요."
"선생님들도 어르신들을 대할 때, 그렇게 하길 바라요."
"지금 어르신들의 모습이 다가올 미래의 내 모습이니 말입니다."
"자! 그래요. 그럼 하나 더 해보까요?"
"내 미래 사진을 바라보면서 제 말을 따라 해봤으면 합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아니다.)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서는
상담실에 크리넥스를 두둑이 챙겨두었다.
다음에 그 어르신이 오실 때는
한 두어장 보단 더 많이 건네어 드리며
말씀 드리고 싶다.
괜찮다고. 동안 고생 많으셨겠다고.
어르신의 잘못이 아니니
펑펑.
우셔도.
괜찮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