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를 가두기에 효엄이 있는 것은 일기장 만한 것이 없다.
나는 그 파도가 방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도정하는 펜을 들고 서툰 미장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그런 날이면 밤잠이 없어진다.
아무리 완벽하려해도 허공이 보이니까.
얼마 전의 일이다.
원치 않는 판도라 상자가 열어져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그 상자의 주인공은 내가 분명 아는 사람인데 낯선 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말라고 한참이나 나를 응시했고,
그 밤은 가위에 눌려 잠에 들지 못했다.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 상자가 닫아지지 않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한 없는 슬픔이 몰려왔는데
실망보다 상자의 주인공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고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잠시 마음이 부산했지만,
이러한 사실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희망을 잃게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다만, 나는 행복을 바랄 뿐이다.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