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이야기
살아온 날들 속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나 또한 여러 날이 있지만 9월 20일이 그러한 날이다.
그러니까 2년쯤 되었을까. 이날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다시 살게 된 날이라 그렇다.
그 날 이후로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일과 잠을 자고 눈을 뜨는 일들의 사소함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기적인 오늘의 하루라는 표현은 나에게 감성을 떼어낸 극사실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이 하루 속에 사는 나는 부족할지라도, 이 하루는 나에게 함부로 살 수 없는 오늘이다.
그 당시, 나는 주말에는 목회 일을 그리고 주중에는 노인 복지 일을 했었다.
- 그렇다고 특별한 마음가짐 이런 것은 없었고 그냥 일이 있으니 해야 했다 –
겹벌이를 하며 공휴일에만 쉬어야 하는 삶에 핑계치 못할 사정이 있었고,
나는 그 삶을 책임져야 했었으며 새로움이란 찾아볼 수 없는 하루하루가 나에게 오롯이 주어지는 큰 벌 같은 것이었다.
그날따라 그 벌을 잊은 나는 스스로 새로운 일을 벌였다. 부산스레 블루베리를 갈아 텀블러에 따랐을 때, 연보랏빛 색깔이 고와 설레었으며 그 길로 10분 일찍 출근길에 오르기 위해 미리 시동을 켜고 출발을 했다. 신랑은 운전했고, 그사이 내가 라디오를 켜니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 간만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거기에 새콤한 블루베리 주스가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텀블러 뚜껑을 열어 보이며
‘신랑! 이거 맛있겠지?’하고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때였다. 굉음과 함께 나의 몸은 왠지 모르게 허공에 돌아갔으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살아오며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해 그리웠던 이들이 하나둘씩 필름처럼 생각이나 후회가 되었다.
‘아, 이게 끝인 건가?’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 후로 베리 블루_한 나의 날은 한동안 지속이 되었고, 그 날 10분 일찍 출근길을 나서지 않았었더라면,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었을까를 수없이 생각했다. 타던 차는 처참히 찌그러져 바로 폐차시켰다 했으며, 나는 왼쪽 앞가슴뼈 3곳과 척추의 3, 4번의 골절 그리고 손목과 얼굴에는 에어백이 터지면서 나타난 상처들이 내 몸에 머무르게 된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게 되었다.
그 때문에 다 큰 여자는 자기 몸 일으켜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고,
아기처럼 되어서는 보호자 침대에 앉은뱅이로 쭈그려 있는 어매만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서러웠다.
‘이 일만 아니었다면 이번 달에는 딸이 안수받을 수 있으려나 하여 좋아하였을 어매인데…….'
'이 일만 아니었다면 순조롭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되뇌며 하던 일과 계획했던 일 모두를 그만두어야 했다.
좋아지는 날이 언제인지 기약이 없어 엄마는 고향에 내려가시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 나의 벌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 때쯤 병원 청소하는 이모가 무심하게 말을 걸어왔다.
“처자는 어찌 이리로 왔대?”
“오래 있는 거 같은데 많이 다쳤나 보네….”
“.........”
“그래도 이리 산 걸 보면 분명 살려두신 이유가 있는 건데
잘 살아야겠네! 다시 살았으니….”
“네? 아 네….”
‘살려둔 이유…라….’
‘다시 살았다니….’
어쩌다 하나님한테 코가 꿰어서 업으로 삼고 사는 나는 이럴 때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간혹 마주치는 하나님은 이리도 앙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알다가도 모를 이라 별로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언제나 답이 아니라 수수께끼만 던지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나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벌 같은데 비겁하게도 청소부 이모의 입을 빌려서는 상이라니…….
그런 생각에 허리가 더 저렸다. 그 밤에 나는 간호사에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며 더 강한 진통제를 놓아 달라 부탁했다.
- 마음이 허한 탓에 진통제라니 -
그리고 청소부 이모 때문인지 진통제 때문인지 계속 잠을 설쳐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청소부 이모가 이런 이야기한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하고 많은 이모 중에
– 요양사 이모도, 옆 병상 말동무 이모도, 간호사 이모도, 오며 가며 책 빌려주는 봉사자 이모도, 이모란 이모는 다 있었는데 더군다나 상큼한 레지던트 의사 삼촌(?)도 있었는데!! -
왜 굳이 시크한 청소부 이모가 우연히도 그 심란한 말을 나에게 건네어야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 시기쯤이 내 삶에 청소가 필요한 때라 그랬을 것이고, 그 알다가도 모를 분이 앙큼하게도 자신에 대해 은근슬쩍 수수께끼의 힌트를 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말 덕분에 내가 생각했던 큰 벌이라 정의했던 것이 나의 옆에 정체하여 있었다기보다
다만 살아가며 스치는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 ‘1은 1이다’라는 것은 없으니까.
인생은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1은 2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재미있는 게 인생이니까.
내 짝꿍은 비가 오기 전에 항상 나한테 묻는다. 내일 비가 올 것 같냐고 말이다. 그리고 나름 정확하게 예보를 해준다.
아직도 ‘악!’ 소리 나는 통증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평소보다 더 뭉근하게 짓누르는 통증이 왼쪽 허리에서 발바닥 끝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한 자세로 오랫동안 글을 쓰는 날이면 할애한 시간만큼 누워있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
이 통증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이 통증이 없어졌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도 하지만, 함부로 살 수 없는 오늘에 대한 증거이며
내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래도 사는 데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상과 같은 벌을 받은 내가 혹은 이런 벌과 같은 상을 받은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의 아픔과 통증을 할애하여 꼭 하고 싶은 말,
그것은
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이 사는 오늘이라는 하루는 특별할 게 없어도 더없이 좋은 날임에 틀림이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살자.
아프더라도 다시 살아 봤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의 어찌할 수 없이 내뱉는 한숨도
당신이 이때껏 살아온 이유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그 속에 아쉬운 것, 그리운 것이 있다면
모두 모아
끝날에
후회하지 않도록
다시 살아 봤으면 한다.
시 하나로 글을 맺을까 한다. 이 시는 참으로 서러웠던 때, 내 눈이 가을 창가의 허공을 돌리며 눈물을 흘릴 때,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만 졸이던 어매가 그나마 자기가 나보다는 어른이라고 하며 위로해 준 말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 괜찮아질 때쯤 키우던 앉은뱅이 다육식물을 보다 어매가 한 말이 생각나서 그에 덧대어 쓴 시다.
앉은뱅이 당신
비가 앉았다
흘려보내지 않고
고이 품는 초록 앉은뱅이들
꿈꾸다 졸다
이제는 더욱 껴안는다
내가 바라보는 당신 같다
크게 양팔을 벌려
하루는 슬피 우는 나의 빗물을
터지지 않도록 고이 접어
언젠간 다 지워져
괜찮다 말하는
앉은뱅이 당신
당신이다
지금 나는 괜찮다.
아니 괜찮아지는 중이다
그러니
당신의 상처도 언젠간 다 지워지리라.
아프지 않은 사람은 그 아무도 없으니까.
아!
뭉근하게 욱신거리는 것이
내일이나 모레쯤에 비가 올 것 같다.
꼭, 우산은 꼭 챙기시길.
그리고 옆집 아짐 같은 이가 쓴 이 글도 한번 믿어보시길.
밑져봐도 나쁘지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