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쓸한 이방인의 노래 -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
1. 들어가며
허수경의 시집을 받아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날씨가 이리 좋을 게 뭐람?’ 하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맞닿았을 때는 내 머리에만 먹구름이 생기고 어디선가 비를 맞고 서 있는 (「늙은 가수」)가 표정을 빠뜨린 채(「표정 1」)을 나타냈다. 또한 그녀는 ‘아아 오오 우우’(「저 나비」)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문체의 노래를 이어 가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녀의 노래가 자신의 불우(「불우한 악기」)를 다하며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어떠한 근원적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시편의 내용과 겉표지 색이 너무나도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집을 읽는 내내 그녀는 나를 자신의 노래에 동조하도록 만들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상실, 결핍, 침묵의 언어들로 부르는 쓸쓸한 이방인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곡조들에는 큰 고통과 절망이 서리어 있고 희망은 줄곧 닿을 수 없는 먼 집이었다.
2. ‘상실’의 노래
1) 아버지의 죽음
시인 허수경에게 있어서 존재에 대한 상실은 시적 자아를 크게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고향과 사랑과 아버지를 서울에서 잃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 투병 중 결국 운명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허수경의 시 세계에 있어서 거대한 세계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고향인 진주를 떠나 가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었는데 그러한 그녀의 노동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순간 그 의미를 잃게 된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혼자 가는 먼 집」 전문
시집의 표제 시가 된 ‘혼자 가는 먼 집’에는 ‘당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의 상실이 들어 있다. 위 시의 ‘돌아감’, ‘자연과 달과 별’, ‘킥킥’ 등에는 부재를 자연으로 수용하려는 그러나 상처 앞에서 무력해지는 시적 자아의 노력이 들어 있다. ‘가져서는 안 되’(「아버지의 유작 노트」)였던 아버지의 가난하고 착한 일생, 아버지와 함께한 산행(「저 누각」)을 아프게 추억하고, ‘딸의 자궁’으로 들어와 한 줌의 가엾은 ‘풀무더기’(「가을 벌초」)가 된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존재에 대한 상실을 아파하고 있다.
2) 사랑의 상처
허수경은 표면적으로는 고고학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이향(移鄕)에 관하여서는 다음 단락에서 구체화하고자 한다.- 만약 내가 고고학자가 되어 그녀의 시를 발굴한다면 그녀의 시에는 무엇이 나올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뉴스에는 신라 시대의 왕릉을 발견하였고 그곳에 있는 학자들은 희열에 가득 찼다. 이러한 황금 옷과 장신구들이 이례적이라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시간의 굴레에 묻힌 그녀의 시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시집의 표지 뒷면에서 ‘사랑의 상처’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이 썩기를 원한다. 오로지 몸만 남아 채취되지 않기를 기록되지 않기를, 문서의 바깥이기를’
사랑의 상실과 그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몸이 아닌 마음이 썩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더불어 ‘그 역사의 운명 속에 내 마음의 운명을 끼워 넣으려 하는 시인은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시적 자아의 특이성이 상처가 마음에 남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발현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사랑을 요약하자면 온 마음과 온 몸의 상실인 것이다. 이러한 실재성은 시적 자아를 ‘고장난 차로’ 은유하여 고통을 심화시키고 그 사랑은 ‘몸과 자궁까지 다리’인 뱀과 같다고 말한다.
혼자 대낮 공원에 간다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말하기 위해 가려고, 그냥 가는 바람아, 내가 가엾니?
삭신은 발을 뗄 때마다 만든다, 내가 남긴 발자국, 저건 옴팍한 속이었을까, 검은 무덤이었을까, 취중두통의 길이여
고장난 차는 불쌍해, 왜?
걷지를 못하잖아, 통과해내지를 못하잖아, 저러다 차는 썩어버릴까요
저 뱀도 맘이 아파, 왜?
몸이 다리잖아요 자궁까지 다리잖아요 그럼,
얼굴은 뭘까?
사랑이었을까요……
아하 사랑!
마음이 빗장을 거는 그 소리, 사랑!
부리 붉은 새, 울기를 좋아하던 그 새는 어디로 갔나요?
그런데 왜 바보같이
벌건 얼굴을 하고 남몰래 걸어 다닐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지?
그 손, 기억하니?
결국 마음이 먹은 술은 손을 아프게 한다
이 바람……
내 마음의 결이 쓸려 가요 대팻밥 먹듯 깔깔하게 곳간마다 손가락, 지문, 소용돌이, 혼자 대낮의 공원
햇살은 기어코 내 마음을 쓰러뜨리네
당신……
- 「흰 꿈 한 꿈」 전문
3) 고향의 상실 : 독일로의 이향(移鄕)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의 상실로 허수경은 첫 번째 이향의 장소인 서울을 떠나게 되고 이조차도 머물 이유가 사라지면서 결국 고국을 떠나게 된다. 그녀가 단순히 고고학 연구를 위해 독일행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의지적 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상실한 고향의 재건을 위한 떠남이었다. 더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서 소외를 극복하려 하는 것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후자의 욕망이 클수록 허수경의 독일행은 모색과 세움이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시인 본인이 자처한 이방인의 삶은 자신의 내면적 존재의 발굴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불우한 고통과 결핍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를 찾아 나서는 시인과 시간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어딘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작고 하기 전, 오은 시인과 나눈 담소 중 ‘한국도 독일도 자신에게는 외국이다’라는 말에서 그녀의 집은 너무나도 멀리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2. ‘결핍’의 노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은 항시 배가 고프다. 겉 육신의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결핍이 타향살이를 하는 이에게 서러움으로 덮쳐올 때가 있다.
이처럼 비극적인 실존 상황에 직면한 시적 자아의 고통은 몸과 마음의 불일치 또는 허기라는 구체적인 감각으로 표현된다. 성취 불가능한 마음과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은 ‘몸 얻지 못한 마음’(「공터의 사랑)」으로 묘사되고, 정신적 결핍은 허기가 된다. 허수경이 독일에서 고향을 상기하며 쓴 시에는 고향의 음식이 맛과 냄새와 함께 자주 호명되는데, 이는 고향과 어린 시절, 공동체에 대한 향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마치 꿈꾸는 것처럼」),‘무얼 먹어도 아픈 저 점심상’(「서늘한 점심상」), ‘배가 고팠네’(「저무는 봄밤」) 등의 배고픔은 서울에서 시인의 영혼이 처한 결핍의 상황을 여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서울 처음 와서 처음 뵙고 이태 만에 다시 뵙게 된 어른이 이런 말을 하셨다 자네 얼굴, 못 알아볼 만큼 변했어
나는 이 말을 듣고
광화문, 어느 이층 카페 구석 자리에 가서 울었다
서울 와서 내가 제일 많이 중얼거린 말
먹고 싶다…,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잘 살아남겠다는 욕망이
뒤엉킨 말, 먹고 싶다
한 말의 감옥이 내 얼굴을 변하게 한 공포가
삼류인 나를 마침내 울게 했다
그러나 마침내 반성하게 할까!
나는 드디어 순결한 먹고 싶음을 버렸다 서울에 와서 순결한 먹고 싶음을 버리고
조균의 어리석음, 발바닥의 들큰한 뿌리
그러나 사랑이여, 히죽거리며 내가 너의 등을
찾아 종알거릴 때 막막한 나날들을
함께 무너져주겠는가, 이것의 먹고 싶음,
그리고 나는 내 얼굴을 버리고
길을 따라 생긴 여관에 내 마음조차 버리고
안녕이라 말하지 마 나는, 먹고 싶다…
오오, 날 집어치우고…
-「먹고 싶다…」 전문
자신의 얼굴과 마음 까지 던져버리고 무너져내려야 하는 타향살이인데, 시인에게는 ‘함께 무너져 줄 사랑’은 없거나, 있어도 그 사랑조차 사막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인 자신을 발견하고 더불어 이것이 시인의 노래를 완성 시키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3. ‘침묵’의 노래
타향의 언어생활에서 쉬이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은 침묵이다. 해외에 처음 여행을 갔을 때를 생각해보면 의사소통을 위해 침묵의 ‘보디랭귀지’를 구사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방에서의 언어는 침묵으로 시작하여 언어와 행동이 같이 가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그때의 그 답답함과 고독감이란.
허수경 또한 현실에서 철저한 이방인일 뿐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낯선 언어로, 그것도 사멸된 고대어와 고대문명을 연구하는 한국 여자, 서구 문명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온 이방의 시인은 동서양의 다양한 정체성들 속으로 스스로 소외되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이 침묵이라는 것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침묵은 자신을 잠시 멈추게 하며 그것으로 인해 자아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에 대한 내면을 직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첫 번째 시편들로 뛰어난 언어 감각을 평가받던 허수경의 시와 형식적으로 비교한다면 그 수려함은 줄고 가락이 탄력을 잃었다거나 말 줄임표로 생략이 많아지고, 논리적 이해를 가로막는 단절과 비약이 비문 형태로 나타나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침묵은 깊어져 ‘꿈’이나 ‘무표정’이라는 시어로 발현되고 있다.
......여행을 한다, 겨울 속으로 눈은 끝없이 내리고, 새는 후두둑......, 인적의 바퀴는 눈에 쓸려가고 우렁우렁
.....설산(雪山)이 대답하는 고요......나는 발견한다.....
대숲......
(중략)
...... 며칠을 서성인다, 들어가지 못하고, 저 숲의 속은 자궁처럼 고요하리라 탯줄처럼, 황홀의 타원 쭈글쭈글한 주름벽의 황홀......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서는 안 된다, 인적의 바퀴처럼 지나온 것들은 마땅히 묻을 것을 묻어준다......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일생이었도다......
- 「아버지의 유작 노트 중에서」 부분
이 건물의 주인은 조랑말도 지나갈 수 없는 곳에다 포크레인을 끌어들일 게 뭐람 저 가질 수 없는 표정을 한 아가씨
저 아가씨라도 자본이 소유해낼 수 있는 꿈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빌어먹을, 무표정으로 새로 시작하려는 것들이 끊임없이 목숨을 받고 또 받고 있는 걸까
- 「표정 1」 부분
4. 나가며
이 시집의 페이지를 닫으며 왜 난데없이 ‘굿텐 탁’ 이라 인사하는 하이데거 아저씨가 생각이 날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규정한 하이데거는 ‘인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언어의 근원인 (존재)언어가 말하는 것이며(…) 언어는 존재자로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는 하나의 지평이자 인간 본질의 거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언어는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Sein) 자체이고 인간이 관여하고 사유하는 모든 존재하는 것(존재자)의 고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허수경은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을 드러내어 진리를 말하려는 고고학적 시인이 아닐까. 상실과 결핍, 침묵의 노래들이 더욱 그녀를 그녀답게 한 것이 그 증거가 된다. 조금은 쓸쓸한 노래이긴 해도 자신의 존재를 밝혀내고 시적 자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직면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기에 오랫동안 아껴 응시할만한 시편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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