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까 하다가 차를 돌려 내장산으로 향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산으로 향하는 길은 엄마에게 달려가는 길 같아서 좋다. 능선과 능선을 따라 눈길을 내면, 바람이 일랑이고 그 소리에 놓이는 마음들.....
특별히 오늘은 내장호수의 윤슬을 보고 싶었다. 반짝이는 은은한 일을 배우러 말이다.
초록 고양이 등 사이 흰 분필로 깊은 선을 그어 나가듯, 아주 천천히 차를 몰고 나는 더욱 우거진 산으로 향한다.
고양이 털 속 아무도 모르는 곳에 다다르면 청단풍 마을이 나오는데 창문을 내려보면 계절을 새로 내느라 파랗게 부은 손가락들이 겹겹히 쌓여져 있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들을 느끼게 된다.
'나도 너희처럼 새 계절을 낼 수 있을까?'
내장호에 다다르고 어제 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어제는 모처럼 서울에 갔다가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했는데
오랜만에 본 이가 '요새 힘든 일은 없지?' 라고 묻기에 '그냥...이제는 좋은 사람들 좀 많이 만나보고 싶네'라고 말했다.
소중한 안부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깊어져서 흐르는 물의 빛, 윤슬
초록색 털에 더욱 윤기가 나도록 나는 그 빛을 고양이 숲 한켠에 켜켜히 숨겨둔다. 내일도 살곰 살곰 왔다가 깨지 않도록 몰래 와 보면서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야겠다.
소중한 이들의 안부와 무르익는 새 계절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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