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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르르의 마을 - 상상력 노트

by noobim 2023. 2. 13.

르르의 마을

 

*

 

  얼마 전 시를 쓸 때, ‘우르르’라는 단어를 썼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 ‘르르’ 라는 단어가 너무나 귀엽다는 생각을 했고 ‘르르’로 끝나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르르’로 끝나는 단어는 모두 내가 좋아하는 부사(副詞)였다. 심지어 동화책도 있었다.

 

  나는 이 ‘르르’를 의인화 하고 싶었다. 내 이름도 부사인데 이렇게 ‘고유명사’로 살아있으니 무엇인가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 ‘르르’들이 사는 마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 마을에 사과(부사) 축제가 열린다는 설정으로 마을 이장이 이 발랄한 ‘르르’들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르르’들은 모두 이름은 같지만 각기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가씨 가치씨 갸씨 거치씨 고씨 까치씨 깨씨 꺄씨 꼬씨 나스씨 너쓰씨 다씨 대그씨 데그씨 도씨 두그씨 두씨 드씨 디그씨 따씨 때그씨 또그씨 또씨 똬씨 뚜그씨 뚜씨 뜨씨 띠그씨 바그씨 바씨 반드씨 반지씨 뱅그씨 버그씨 버씨 번드씨 번지씨 보씨 부그씨 부그씨 부씨 빗찌씨 빙씨 빠그씨 빤드씨 빤지씨 뻔지씨 뽀그씨 뽀씨 삥그씨 사씨 소씨 수씨 스씨 쓰씨 씨씨 아그씨 아씨 야드씨 오그씨 오씨 와그씨 와씨 왜그씨 우그씨 우씨 워씨 으그씨 으씨 이드씨 재그씨 저씨 조씨 주씨 즈씨 지그씨 지씨 짜그씨 짜씨 쩌씨 쪼씨 쫘시 쭈시 찌그씨 찌씨 차씨 츠씨 콰씨 쿼씨 팽그씨 퍙그씨 퍼씨 포씨 푸씨 핑그씨 하씨 하씨 함치씨 호씨 화씨 후씨 훔치씨’ 등등 호명 후 르르 마을의 이장은 ‘혹시 빠진 사람 없지요? 이거 원참 너무 많아서...거기 족보(사전)을 좀 줘봐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독고다이 이 르르들은 대답이 없을 것이라 상상이 된다.

 

  이장은 르르 마을에 오신 신사 숙녀-문장을 이루는 주어와 동사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들에게 좋은 ‘르르’를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혼자서는 말이 어눌한 ‘르르’를 고를 것! 둘째, 어딘가 부끄러움이 많아 귀퉁이에 서있는 ‘르르’를 고를 것! 셋째, 혀끝에서 여러 갈래로 분열하며 미끄러지는 ‘르르’를 고를 것! 넷째, 어디선가 보지 못한 낯선 ‘르르’를 고를 것 마지막 다섯째, 감칠맛이 나는 라면 스프와 같은 ‘르르’를 고를 것! 마지막 빨간색의 농익은 사과의 ‘르르’를 고를 것!

 

  이장은 신사 숙녀들에게 마을을 소개시켜 주지만 정작 르르의 마을에는 ‘르르'들이 보이지 않는다. 없어서가 아니라 변두리 주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르르'들은 누구하나 축제의 마당에 오지 않고 신사와 숙녀가 지나갈 때마다 자신의 형태를 소리로 내어 BGM의 코러스를 넣는다. 그것도 써라운드로! 그리고 그들의 노래 중 마지막 후렴은 이렇다.

 

  르르르르르 르르르르르 르르르르르 (이장의 안내로 번역하면, ‘르르들이 이어지면 수많은 부사들이 열리고 당신들 속에서 부드럽게 선을 없애요’ 라는 말)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두서가 없지만 나처럼 부사같은 사람들을 모으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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