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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소개

진은영의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by noobim 2020. 8. 20.

* 시인의 '새로운' 사전 -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1. 들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문학 함은 극명히 그 깊이와 수준이 다르다.

오늘 소개할 진은영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시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문학적 깊이가 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을 함에 있어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하여, 또한 문학이 단지 개개인의 감정과 의식을 건드는 일에만 국한되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진은영의 시들을 통해 큰 빛을 보게 됨과 동시에 만족할 만한 답도 찾게 되었다. 이글에서는 그녀의 문학 속에서 발견하게 된 것들을 나누며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2. 詩는 죽었다 : 이전 詩들과 이번 詩 사이에서 태어난 시인의 새로운 사전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그녀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건조한 약력을 보기 이 전에 시인의 트위터에 먼저 가보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트위터의 한 줄은 다음과 같았다.

 

‘시 쓰는 사람 철학책도 종종 읽는 사람’

 

그녀는 ‘니체’를 연구한 철학 박사였다. 보통 독일이 나은 철학자 ‘니체’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신은 죽었다’

 

니체는 기독교와의 대결을 통해 모든 기존 가치에 대한 거부를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모든 기준이었던 신의 죽음을 선고하고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초인 사상을 제시한 철학자이다.

그는 스스로 서구 사회에 반기하였고, 많은 시간 동안 축척된 사상들에 저항하는 망치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이전의 전통적인 프레임을 깨뜨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 니체와 같이 진은영 또한 자신의 시를 통하여 이전과는 다른 시의 모습을 비춰내고 있었다. 다음 시에서 진은영은 자신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녀는 적극적인 발언을 통해 이전 시들과는 달리 자신이 쓰려는 시를 명시한다.

 

이 시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네가 좋아하는

예쁜 여자, 통일성, 넓은 길이나 거짓말 같은 것들이

 

다만

 

문을 열자 쏟아지는 창고의 먼지, 심한 기침 소리

네게 주려 했는데

실수로 꽝꽝 얼린 한 컵의 물

물 밑의 징검다리, 쓰임을 알 수 없는

약들이 있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미래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지금 여기”

더듬거리는 혀들이 있고

 

동물원에 가서 검은 정글원숭이들과 싸우고 싶었는데

팬지 화분을 선물 받은

 

어린 시절에 대해서라든가,

영원한 태양보다는

그늘에 자라는 붉은 잎의 사실성을 믿는 그런 사람에 대한 부러움

혹은 몇몇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다

 

그것이 만들어낸

이전 詩들과

이번 詩 사이의 고요한 거리

 

그 위로

시간이 눈처럼 자꾸 내렸다

아무것도 하얗게 덮지 않고 흩어져버렸다

 

-「이전 詩들과 이번 詩 사이의 고요한 거리」 전문

 

  어딘가 니체를 닮은 그녀는 ‘이전의 시들은 죽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앞 세대의 시들과 단절을 분명히 선언한다. 그녀의 시에는 “예쁜 여자, 통일성, 넓은 길이나 거짓말”과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시와 시적인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전의 시들에서 아름답다고 말해왔던 것, 시는 동일된 맥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눈에 보이고 잡히는 미래에 대한 넓은 길, 심지어 화려한 감성 뒤에 숨겨진 거짓말과 같은 것들을 지나간 ‘이전의 詩들’이다 라고 규정하며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죽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은영의 시에서 ‘실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시에 있는 것은 돌보지 않아 오래도록 쌓인 먼지, 끌어 올려내야 건널 수 있는 물 밑의 숨겨진 징검다리와 실수로 얼려버린 물 한 잔, 그 앞에 정체 모를 약들과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지금 여기”를 말하는 혀들 같은 시가 있다. 그녀의 시에는 실상 있다고는 하지만 결핍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그녀 시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는 실존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아무 것도 덮지 않고 하얗게 흩어져 버렸다’라고 말하면서 공간적 거리는 명시하되 시간의 존재는 증발시킨다. 쌓이지 않고 흩어져버린 시간 속에 이전 시들과 이번 시 사이의 존재로서의 거리만이 또렷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은영은 자신의 시가 이전 시들 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경계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인의 사전을 쓰며, 자신만의 혀들을 쉬지 않고 찾고 있다. 그 혀들을 찾게 되면 지금은 더듬거릴지라도 미래에 대한 실존도 쉽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첫 단추가 잘 끼우면 옷을 입고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전문

 

  그녀의 혀에는 유난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있다. 자신의 시를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라고 정의함으로써 신비롭고 아름답고 부재의 낭만적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진은영에게 시는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 사라져버린 것들’이며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숨어버린 모음들’,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 버린 강물’(「詩」)이다. 이처럼 그녀의 시어들은 ‘사라져 버린 것들’ 혹은 ‘숨어버린 것들’에 바치는 ‘애도’의 형식이 된다. 이 애도는 시가 어딘가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시 이것이 진은영 시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를 기록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자신의 시집 첫 장에서 '파라'의 말을 인용할 만큼 자신만의 사전이 소유되기를 집착했던 시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이 궁금해졌다. 이제는 트위터가 아닌 그녀의 시집에서 그 사전을 소개하는 첫 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었다. 이것이 진은영 시인의 새로운 사전을 이루는 주된 원료였다.

 

3. 결핍 : 새로운 사전의 원료

 

1) 과거 – 가족, 그 이름은 감옥

 

  그녀의 시에서 환상성이 없는 시가 딱 하나 있다. 처음에 그 시를 보고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시가 맞나 싶어서 말이다. 바로 「가족」이다. 그녀의 작품치고는 너무 단순했다. 이 말을 달리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감정을 매우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그녀에게서 가족이란 반복되는 감옥이었다. 그녀는 천상에 살다가 아버지라는 유괴범 때문에 자신이 이곳으로 유괴되어 왔다고 믿으며, 그녀에게 가족은 더이상 즐거운 곳이 아닌 낯설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온 어떤 ‘감옥’으로 가족을 인식하고 있다.

그 유괴범은 덧셈의 가업을 이을 장자가 되지 못하는 나를 좁은 철장 안에 가두게 되며 (「유괴」 중에서) 그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 외로운 풍경의 한 페이지이다. 이 감옥 안에서는 물보다 진한 피의 연대라든지 서로를 감싸 줄 수 있는 사랑은 없다. 그렇기에 가족 안에서 작용하는 온갖 금기가 쉽게 깨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에 대한 윤리적인 부담도 시인은 비교적 쉽게 벗어 던진다.

 

집을 등에 이고 사는 것들은

모두 달로 가야 한다

나뭇잎 위에 앉아 있는 달팽이를 본 적이 있는가

배경으로 언제나 달이 뜬다

집이 아니야 짐이야

그 짐 속에서는 아버지가 주무시고

어머니가 손톱을 깎으신다

동생은 수학 문제를 풀고

아버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외출하셨으면 좋겠어요

꿈속에선 나는 자주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

제발 나타나지 마세요 아버지 자꾸 죽어요

내 집이 피로 붉어요

애야 노을이 져야 달로 간다

나는 너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달이 창백한 건 일찍 나왔기 때문이 아니야

달은 출혈의 산물이야

 

내가 얼마나 피 흘리고서야 잔잔히 떠오르겠습니까

 

-「달팽이」 전문

 

  감옥에서 그녀는 가족이 거주하는 집을 짐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녀에게 지상의 집은 천상에서 유괴되어 와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이러한 결핍은 근원적이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는 떨어져나온 천상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집을 등에 이고 사는 것들”이 “모두 달로 가야”하는 까닭이다. 결핍을 메우고 달로 가기 위해서는 출혈을 필요로 하는데 이 출혈의 의미는 속죄인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귀가」에서 보여지듯 시인이 인식하는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특히 가족중심주의에 길들어진 우리 사회에서 때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공동체의 감성을 이용한 신파적인 매개체가 될 수 있겠지만, 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거짓말 같은 것들’이기에 그녀의 시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단단하고 유연성 없는 이 감옥을 그녀는 ‘이번 詩’를 통하여 뚫고 결핍된 것이라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직면하며 자신의 새로운 사전에 기록하고 있다.

 

2) 현재 – 서른 살, 돌아보는 청춘

 

진은영은 1970년 태생으로 이 시집을 낼 당시에는 30대 초반이었다. 저번 강의 시간에서도 언급되었듯 나이 서른은 중요한 문학적 플롯이 된다. 시인의 서른에는 변화무쌍한 밀레니엄도 함께 했다.

그러한 시기에 시인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새로워야 할 청춘이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 보면 여전히 우울한 염소 한 마리와 같은 결핍들이 가슴 속에 살며, 담담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바라보는 풍경 속에 「봄이 왔다」라고 파란 페인트 통을 들고 외치는 낯선 타자가 있었다. 거기에 시인은 ‘자신에게는 붉은색이 없으므로, 자신의 손목을 기꺼이 자르겠다’ 이야기하는 결핍된 청춘이었으리라. 시인은 자신의 청춘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매혹 속에서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의 『삼십세』를 정신없이 넘기면서 그 나이 넘어서까지 결코 살아 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시절이 청춘이죠. 혹은 결핵 환자였던 카프카의 말대로 남들이 재채기로 증명한 진실을 나는 폐로 증명해야만 하는 시절 같은 거요. 얼마 전까지도 가벼운 감기처럼 넘어가야 할 일들을 폐병처럼 앓았던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면 서른 살이 오래전에 지나 가버렸다는 게 너무 낯설기만 하고, 결국 어리둥절하게 “청춘은 가버린 것 같다…….”라고 중얼거리게 돼요.'

 

  이에 더하여 그녀에게 있어서 청춘이란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하고 절여진 생선도 조려 놓은 과일도 아닌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는’(「청춘 1」) 것으로 ‘네게 주려 했는데 실수로 꽝꽝 얼린 한 컵의 물’(「이전 詩들과 이번 詩 사이의 고요한 거리」)과 같은 결핍의 나날이었다. 그래서 ‘맞아 죽고 싶고,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은, 누군가가 너무 일찍 흔들어 놓은 나무’와 같은 것이다.(「청춘 2」) 하지만 청춘을 돌아보면 실수와 같은 미흡함이야말로 그때 만이 관용 될 수 있는 상징 같은 것이 아닌가? 시인은 다시금 자신의 실존을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목 사이인 「서른 살」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고 다짐하게 되며 이 또한 자신의 사전에 빠질 수 없는 원료로 저장한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 「서른 살」 전문

 

4. 미래 - 빛, 반짝이는 그런 날

 

시인의 사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빛’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게서 오는 결핍과 실수와 같은 청춘의 날에 대하여 ‘아프다’라고만 회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자신의 미래에는 빛과 같이 반짝이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떨림이 전하지 못하는 신음을

크게 그려줘 내 몸에 곱게 새겨줘

그런 날이면 망친 그림을

잘못 그려진 나를 구기지 말아줘 버리지 말아줘

잘못 그려진 나에게 두껍게 밤을 칠해줘

칼자국도 무섭지 않아 대못도, 동전 모서리도, 그런 날이면 새로 생긴 흉터에서 밑그림이 반짝이는 그런 날

 

-「그림 일기」 부분

 

  또한 그녀의 시들을 바라보면 색채를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백한 물고기에게 황금빛 수의를’ 입혀주고 ‘무엇에 차이기 전에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돌멩이에게 이쁜 날개를’ 달아주기를 소망하는 그녀의 일기는 그림으로 그려진다. 때로는 그림을 망치기도 하지만 구겨버리지 말고 그 위에 ‘두껍게 밤을 칠해’ 달라고 요구한다. 시인은 결핍의 불안증을 느낄 때마다 빛의 마법사인 ‘반 고흐를 빈둥빈둥 노는 듯하게 생각’(「대학 시절」)했던 것으로 보아 빛에 대한 갈망이 시 속에서도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년 시절 「그림 일기」와 같이 어렸을 때 했던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림 그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시에 나는 형형색색 예쁘게 칠한 그림을 왜 손과 얼굴이 다 시커멓게 되도록 검은색 크레파스를 수고로이 낭비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시를 통하여 그것이 바로 ‘칼’이나 ‘대못’이나 ‘동전 모서리’로 까만 바탕을 긁어 신비로운 ‘빛’을 찾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의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그림을 어둡게 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의 시에 실존하는 것은 결핍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밑그림이 반짝 반짝이는 그런 날에 생긴 흉터도 이제는 그녀에게 무섭지 않은 것이 되어 그의 사전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진다.

 

5. 나가며

 

  서두에 진은영의 시를 보고 큰 빛을 발견하였다고 말하였는데, 그 답을 하면서 이 발제를 맺으려 한다. 일단, 그녀의 시에도 미래파 시인들의 공통된 난해함은 분명 있었지만, 시의 전략만을 위하여 쓰여진 그로테스크함에 정지해 있지 않아서 반가웠다. 그녀는 거기에 더하여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동화적 환상을 곁들이는 서사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만의 시어로 어두운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었다.

  여담을 곁들이자면, 이 시인은 문학을 통한 치유 방법을 모색하는 한국상담대학원 주임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글로 보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개인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사회가 가진 트라우마 극복에도 함께하여 세월호에 대한 대담에 추모 시를 발표하고 활동함으로 시의 효용성을 자신의 삶에서 극대화 시키고 있다. 시인은 「긴 손가락의 詩」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외부와 만나고 또 하나의 잎으로 피워 나가고 있다. 더불어 발제를 준비하면서 진은영의 시가 왜 이 시기에 배치됐는지에 대한 세심함도 눈치챌 수 있었다.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또 니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니체는 필연적인 운명에 체념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허무주의란 단순한 절망의 과정이 아닌 깨달음의 과정이자 동시에 허위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나 성숙과 깨달음의 이르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은영 시인은 철저한 니체의 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결핍과 타인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진은영은 니체와 함께 ‘아모르 파티’를 연신 신나게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

 

  그녀의 시집을 읽고 나 또한 내 사전의 첫 줄이 궁금해졌다. 비록 우리의 삶이 의심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 될지라도 그러한 결핍을 원료 삼아 반짝반짝 빛나는 나만의 사전을 새로이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친구, 정말 끝까지 가보자’라는 표지 뒤 시인의 말이 문학을 처음 시작하는 나에게 참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 작가 약력

 

- 1970년 대전광역시 출생

 

-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철학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

 

- 수상 이력

2000년 문학과 사회 등단 수상

2009년 제14회 김달진 문학상 젊은 시인상

2010년 제56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

 

* 개인저서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문학과지성사, 2003.

『우리는 매일매일』 , 문학과지성사, 2008.

『훔쳐가는 노래』 , 창비, 2012.

 

- 철학 책

『들뢰즈와 문학-기계』 , 소명출판, 2002.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 그린비, 2004.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 그린비, 2007.

『코뮨주의 선언』 , 교양인, 2007.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웅진주니어, 2009.

 

- 세월호 관련 책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 문학과 지성사, 2014.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 창비, 2015.

 

문학 상담 관련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 엑스북스, 2019.

 

기타

크리스토프 메켈, 『빛』 , 진은영 역, 문학동네, 1997.

『문학의 아토포스』 , 그린비, 2014.

 

 

* 참고 문헌

 

-논문

이현정, 『진은영 시에 나타난 빛 이미지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2015.12.

 

-평론

김영희, 「제16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라일락과 장미향기처럼 결합하는 진은영 시의 감성 과 정치」 , 『창작과비평』 37(4), 2009.12.

이경수, 「색채와 감각의 마술-진은영론」 , 『실천문학』 78, 2005.5.

 

-대담

진은영·함돈균, 「‘청춘’의 시인, 우리 시대의 전위가 되다」 , 『창작과 비평』 40(4), 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