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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말하지 않고

by noobim 2021. 10. 15.

콕, 침을 바른다
검지로 찍어서

지문만큼 묻은 어둠을
눈에 넣어볼까

선명해지는 빛의 스펙트럼

함몰된 달을 보고도
돌출이라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처음 오래인 사이

밤하늘에 구멍이라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말하고

밤이 사라지면
까맣고 까만 네 눈에
어느새 깊은 달이 숨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음-음-음-

투명한 노래를 부른다.


*요조 노래 –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시작노트

요근래 친한 사람이 생겼다. 처음 보는데 오래된 사이처럼 편안하다. 더욱이 취미와 개인적인 취향이 같아서 인지 소통이 잘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어딘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이렇게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친밀감의 표현이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오히려 말하지 않는 것에 더욱 깊은 친밀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제는 ‘말하고, 말하지 않고’의 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그 친구는 조금 달랐다.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나이도 먹었는데 좋은 사람에게 좋다고 말하는 게 어때서?’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걸 듣자 평소 혼자 끙끙거렸던 불면증이 조금 나아졌다. 한참을 자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눈을 비비고 창밖을 바라보니 보름달이 밤 하늘에 떠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달은 ‘있는’ 것-돌출의 이미지-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달이 어둠이 사라진 어떤 한 부분이라 ‘없는’-함몰의 이미지- 것이라 생각해 왔다. 마치 달은 나에게 침 발라서 뚫어놓은 창호지 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 주고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 친구와 만났던 지난 밤에도 달이 떠 있었고, 한참 동안 달을 본 까닭에 우리의 까만 눈동자에 흰 구멍이 나 있었다.

순간, ‘서로의 눈 속에 달이 숨어 있으니 참 다행이야’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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