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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제 너를 보았어 - 한 페이지 소설

by noobim 2024. 11. 4.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풍경이 하나 있다. 그곳은 맑은 호숫가이고 겨울이 되면 꽁꽁 얼은 표면 위에 흰 눈이 덮혀 마치 카이를 찾는 게르다*의 여정길을 옮겨놓은 듯 하였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회자되는 이곳의 풍경은 단풍이 피어야 비경이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달리 그곳의 아름다움은 가을보다 겨울에 있다. 차가운 미명이 살짝 비추이는 새벽에 장단지까지 푹푹 내리는 눈을 밟고 호숫가에 가닿으면 그 풍경 안에 나는 단순한 점이 되고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는 미래를 살아본 후 마주 하는 하루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신비롭다. 

  어제 꾼 꿈은 그 풍경이 담긴 사진 하나로 시작되었다. 지인의 SNS에서  그곳을 다녀왔다는 소식에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단지 사진에만 내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게 무심히 지나쳤는데 침대에 들어 눈을 붙이자 나는 그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풍경의 사진이 나의 권태로움을 머금고 꿈 속으로 까지 이끌었던 연고일 것이다.
 
  꿈 속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실에서 만나려면 숱한 핑계거리와 만나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이들이 혹은 벌써 소식이 끊긴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함께 있었고, 얼어 붙은 호수 위에는 오로라가 펼쳐졌다. 눈이 그치지 않는 호숫가에서 우리는 포근히 누어 양 팔과 양 다리를 천진하게 위 아래로 흔들고 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우리의 얼굴 위에 펼쳐지는 웃음은 오로라의 빛을 받아 투명한 초록이었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그곳에서 우리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 속으로 내 눈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그 따스함이 담겨있기에 눈을 뜰 수 없어 한참 숨을 고르며 누워 있게 되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꿈의 잔상으로 아직 멈춰있었고 그 위로 아직 뜨지 않은 눈썹 결에 해가 들어 그 호수의 얼음판은 갈래를 낼 때마다 빛을 내며 마치 유리 조각과  같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 생경함에 천천히 눈을 꿈.뻑... 꿈.뻑...거렸고, 온도가 없는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그 후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기르던 장미 화분에 물을 줄 때 지난 여름이 떠올랐다. 구입할 당시에 꽃이 붉고 풍성하였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다. 물을 주면 가지를 따라 그 화분의 이름이 적힌 '카이'라는 푯말 위에도 물방울이 맺힌다. 흘러내릴 때까지 지켜보면서 '어제 너를 보았어' 라고 말해주고는 나는 이렇게 되내었다. 
 
  '안녕, 안녕, 안녕, 살아있을 동안, 가만히 안녕'
 
 
 
 
*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의 주인공 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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