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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너를 보았어 - 한 페이지 소설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풍경이 하나 있다. 그곳은 맑은 호숫가이고 겨울이 되면 꽁꽁 얼은 표면 위에 흰 눈이 덮혀 마치 카이를 찾는 게르다*의 여정길을 옮겨놓은 듯 하였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회자되는 이곳의 풍경은 단풍이 피어야 비경이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달리 그곳의 아름다움은 가을보다 겨울에 있다. 차가운 미명이 살짝 비추이는 새벽에 장단지까지 푹푹 내리는 눈을 밟고 호숫가에 가닿으면 그 풍경 안에 나는 단순한 점이 되고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는 미래를 살아본 후 마주 하는 하루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신비롭다. 어제 꾼 꿈은 그 풍경이 담긴 사진 하나로 시작되었다. 지인의 SNS에서 그곳을 다녀왔다는 소식에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단지 사진에만 내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게 무심히 지.. 2024. 11. 4.
사막비 일을 쉬는 요즘, 집에서 달리 할 일이 없다. 눈을 뜨면 침대에서 오래동안 뒤척이다가 일어나 음악을 듣거나, 티브이를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는 일 밖에 없으니 몸이 무력해 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소모함 없이 지내니 이게 나였나 싶다. 전에는 한 시라도 집 안에 있으면 안되는 외향인이었는데 그간 어떤 세월을 지나왔는지 이제는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집의 현관을 나가봤자 별 재미도 없이 무서운 일만 벌어진다고 되내이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 나의 요즘은 고요하고 무해하다. 조금은 지루하고 외로운 것만 빼면 나름 괜찮은 일상이다.    그러다가 그 날은 기운이 쳐져 일어나자마자 멋진 까페를 가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나갈 채비를 했다. 조금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한 시간 내외.. 2024. 10. 25.
사랑하면 먹어버리는 일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편지의 효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글은 말보다 더 힘이 좋다. 이는 강하거나 세다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유용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친구로부터 답장을 받았는데 그중 흥미로운 주제가 있었다.   어떤 소설에서 본 내용이라면서,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그 상대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머리카락부터 몸을 천천히 먹어나간다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 소설 '향수'도 그러한 쪽이다. - 조금은 섬뜩하지 않은가? 라고도 생각했지만 정작 그 글을 읽을 때는 그것이 이해가 갔었다는 말과 함께 내가 건넨 편지도 그렇게 잘 먹어나가며 기억하겠다고 답장을 주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그 사람의 답장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을 하.. 2024. 10. 11.
의식 의식의 순서 하나, 혼자서 안부를 물을 것하나, 난데 없이 중얼거릴 것뭉둑한 초를 켜고 허밍으로 음-음-음-  살덩이들이 흩어져 있고도처에는 모두 당신이기에검푸른 식탁에 잘 차려지게 됩니다  살과 피, 살과 피 오늘도 당신을 먹음으로 다짐하는 마지막 만찬 새벽의 창문에는 다 꺼진 초의 안개만이 자욱합니다 2024. 10. 11.
竹友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잘 계시지요? 추석 전에 편찬하신 책을 받아보았는데 백수가 무엇이 바빳는지 아무런 기별을 넣지 못하고 있었네요. 무심한 마음을 용서하세요.    많은 목회자들이 있으실 텐데 이 귀중한 책을 저에게 주시다니요.  이 책은 유산같은 책이 아닌가 싶네요. 마치 미뤄둔 숙제를 완성하심에 진심으로 경축드립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부님 되시는 강병주 목사님에 대한 모음이라니 울창한 나무의 뿌리를 보여주시니 감사했습니다.   연관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역을 쉬고 다시금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칭코'라는 소설입니다. 그 책은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인데 마찬가지로 그 뿌리가 어떠했는지 지금 누리는 영화가 누구 때문인지에 대해서 묘사한 책이을 읽고 있었던 터이기에 목사님께서 주신 책이 반가웠습니.. 2024. 10. 7.
진희에게 보내는 편지 날이 많이 추워졌구나 무더웠던 여름이 언제가는지 기다렸는데 말이지. 이번 여행은 어떠했는지 모르겠네 끝여름을 그렇게 뜨겁게 보냈다 하니 너무나도 좋아보였단다. 여행은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 설레임 같은 건데, 일상의 큰 액자 속에 또 다른 일상, 즉 일탈로 가는 작은 액자가 주어지는 것이지. 액자 속에 액자로 들어가는 일 그게 여행이라 생각해. 그 액자 속에 들어가면 희안하게 마법처럼 같은 일이라도 다르게 느껴져 내게 주어진 권태가 변환되어서 원래 나의 일상도 참 소중하구나 라는 걸 난 많이 느끼는데 진희는 어떠하니? 진희가 준 김훈 소설가의 '허송세월'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오더구나 '大學'의 문장인데 '日日新 又日新'이라는 말이다. 이 뜻은 '하루 하루 날마다 새롭고 또 더더욱 날로 새로워.. 2024.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