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79 임지은의 <<무구함과 소보로>> 부스러기 작명소 - 임지은의 『무구함과 소보로』를 읽고 * 들어가며 사물에 따라 이름 붙이는 일은 중요하다. 이름을 붙이게 되면 어떠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름과 일가견이 있는 나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란히’라는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는 하지만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나는 단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 수많은 내가 될 수 없었다. 나란하지 못하고 서재가 질서정연하지 못한 나도 나이고, 척추가 비뚤어져 바르지 못한 것도 나인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팔자도 아니다. 신문에 내 이름이 나면 누구라도 너무나 확연히 기억할 테니까. 그냥 흔한 이름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쁜 짓을 해도 ‘동명이인이겠지?’하고 지나갈 텐데 말이다. 특별히 저녁 스포츠 뉴스 자막에.. 2021. 4. 29. 체휼하시는 하느님 * 체휼하시는 하느님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느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가 어렸을 때, 잊지 못.. 2020. 9. 2. 옥잠화 길을 걷다가 꺾은 꽃 한 송이 매일 새 물을 주어도 시들었던 것이 네가 오면 마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나와 낯선 나를 견디며 길어진 손톱들과 너의 이름을 새긴 수많은 꽃 지방(紙榜)들 가난한 마음으로 웅덩이와 웅덩이 사이를 안아보면 성실한 권태에도 사랑은 이렇듯 물길을 내어 흐르게 하고 고인 아픔은 옥잠화 한 송이로 맑게 피어난다. 2020. 9. 1. 잘 알지만 잘 모르는 시와 시인들 1 - 한용운 '님의 침묵' 감상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을 길을 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꿈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 2020. 8. 23. 민중신학자료-평화와 에큐메니컬 통일 운동 민중신학 세미나 발제 평화와 에큐메니컬 통일 운동- 평화의 개념과 최근 통일운동을 통해 비추어 본 한국교회의 역할- Ⅰ. 서론 - 문제 제기 : 분단의 의미 한반도에서 단일 민족의 역사를 오랫동안 지속해 온 우리 민족이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에 의해 분단된 지 어느덧 반세기 하고도 9년이 지났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과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원치 않는 굴곡의 역사를 거친 우리 민족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민족의 역사를 새로이 전개하리라는 부푼 희망 속에 8.15 해방을 맞이했지만, 실상은 민족 분단이라는 새로운 질곡으로 빠지고 말았다. 식민지 피지배 기간에도 끊임없이 민족해방 투쟁을 전개하였던 우리 민족이지만 독자적인 힘보다는 외세의 힘으로 해방에 이르렀다는 자기 한계로 인해서 우리 민.. 2020. 8. 23. 팔복3-온유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 오늘은 팔복 중 세 번째 말씀인 ‘온유한 자’에 대하여서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나누었던 가난함은 프토카스로 영적인 파산자로서 하느님 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라 했고, 그러한 고백 위에 우리의 애통은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우는 자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팔복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자녀가 되기로 결심한 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장면이라고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온유한 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냥 마냥 참는 것, 착한 .. 2020. 8. 22.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4 다음